정신을 다시 세우는 길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11월 04일(화) 15:45 가+가-

한 사회의 몰락은 대개 경제지표나 군사력의 약화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도덕의 기초’다. 역사 속 제국과 문명은 외적 침략보다 내적 부패로 무너졌다. 로마는 바르바로이의 칼날에 쓰러진 것이 아니라, 정치 지도자들의 사치와 방탕, 그리고 시민들의 무기력한 정신이 제국을 안에서부터 녹슬게 했다.
우리의 사회도 다르지 않다. 지도자의 부도덕함이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마약 범죄가 대중문화 속에 스며들며, 일부 계층의 과도한 사치가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있다.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잊었다. 언론은 자극과 소비를 부추기며, 교육은 가치보다 성과를 앞세운다.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근간은 썩어들어 간다.
지도자의 인격은 단순한 개인 윤리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거울이다. 최고 권력자가 진실을 왜곡하고, 부정한 이익을 취하며, 책임을 회피하는 모습이 반복되면 시민은 ‘정직하게 살아도 소용없다’라는 냉소에 빠진다.
고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왕의 부패는 곧 나라의 멸망을 불러왔다. 아합왕의 불의와 우상숭배는 백성들에게 도덕적 기준을 무너뜨렸고, 마침내 북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현대 사회에서도 지도자가 사리사욕을 위해 권력을 남용하면 법과 제도의 신뢰가 붕괴하고, 사회 전반이 부패의 연쇄 반응에 빠져든다. 마약은 단순한 범죄 문제가 아니라 ‘정신의 무기화’다. 중독은 개인의 의지를 마비시키고, 관계를 파괴하며, 생산성을 무너뜨린다. 한 번 무너진 인간의 내면은 회복이 쉽지 않다.
더 심각한 것은, 마약이 연예계와 패션, SNS 속에서 ‘멋짐’과 ‘자유’로 포장되어 청년들에게 스며든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20세기 중반 이후 마약 문제가 폭발적으로 퍼진 이유는 단지 공급의 증가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쾌락’을 미화하며 절제 없는 삶을 ‘해방’이라 불렀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같은 길을 밟고 있다. 마약은 결국 공동체를 해체하는 무기이며, 한 번 깊이 뿌리 내리면 법과 경찰만으로는 뽑아낼 수 없다.
사치는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서 정신의 병리 현상이다. 일부 계층이 과도한 소비를 과시하는 모습은, 공동체의 가치와 연대 의식을 무너뜨린다. 예전에는 부자일수록 검소함과 절제를 미덕으로 삼았다. 그러나 오늘날 미디어는 ‘초호화’를 부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주입한다.
조선 후기 사대부 중 일부는 권세를 등에 업고 사치를 일삼다가 백성의 원망을 샀다. 역사 속에서 이러한 사치 문화는 필연적으로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결국 민란과 체제 불안을 불러왔다. 절제 없는 소비는 개인의 영혼뿐 아니라, 사회의 지속 가능성마저 갉아먹는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된 배경에는 ‘가치의 전도’가 있다. 진실보다 이익, 성품보다 능력, 공동선보다 개인의 성취가 우선시되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교육은 시험 점수와 요건을, 미디어는 자극과 화제를, 정치인은 표를 얻는 계산만을 좇는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옳은가’라는 질문은 점점 사라졌다. 성경 잠언은 “의가 나라를 높이고, 죄가 백성을 욕되게 한다”(잠 14:34)고 말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문화는 죄를 은폐하고, 불의를 미화하며, 의를 조롱하는 흐름 속에 있다. 지도자의 도덕적 회복이 필요하다. 지도자는 법적 책임을 넘어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한다. 지도자의 인격은 국가의 도덕적 방향타다. 정치 구조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정과 거짓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세워야 한다. 마약과 쾌락 문화에 대한 단호한 거부가 필요하다.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육과 문화 전반에서 절제와 절박함의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
절제, 검소의 미덕을 재발견해야 한다. 부유층이 먼저 솔선해 검소함을 삶의 방식으로 보여줄 때, 사회의 신뢰가 조금씩 회복될 수 있다. 가치 교육의 회복이 절실하다.
가정과 학교, 교회와 사회가 함께 ‘무엇이 옳은가’를 묻고 가르치는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사회의 근간은 ‘진리’와 ‘양심’ 위에 세워진다. 그것이 무너지면, 경제와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오래 가지 못한다. 역사는 하나의 진리를 가르쳐준다. 회개하고 돌아서면, 무너진 기초도 다시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다. 지도자에서 평범한 시민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을 사랑하고, 절제를 실천하며, 공동선을 추구할 때, 우리는 더 좋은 사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회복의 출발점은 ‘정신의 각성’이다. 물질이 아니라, 권력이 아니라, 도덕과 양심이 나라를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