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옷을 걸지 않는 이야기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9월 30일(화) 15:24 가+가-

태초의 창조 이야기는 한 편의 시다. “빛이 있으라” 한마디 말씀이 어둠을 가르고, 무(無)에서 유(有)를 불러냈다. 창조의 여섯 날은 시적 리듬을 품는다. 낮과 밤, 물과 땅, 초목과 별들이 마치 시구처럼 반복되는 후렴 속에서 존재가 탄생한다. 그 리듬 안에서 우리는 창조주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시인이었음을 직감한다. 시는 설명보다 먼저 오는 숨결이다. 성서는 바로 그 첫 숨결로 우리를 부른다.
성서에서 시의 정수는 단연 시편이다. 다윗과 무명의 시인들이 토해낸 탄식과 환희, 찬양과 항변이 150편의 시로 묶였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라는 고백은 장엄한 찬가이자 깊은 신음이다. 억눌린 이의 통곡이 곧 예배가 되고, 절망의 골짜기가 노래의 자리가 된다. 시편은 시가 인간의 가장 깊은 상처와 가장 높이 치솟는 소망을 동시에 담을 수 있음을 증언한다.
이사야의 글은 서정과 격정이 교차하는 거대한 시적 선언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는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심장을 흔드는 외침이다. 예레미야의 탄식은 나라를 잃은 백성의 비가요, 동시에 하나님의 아픈 심장을 노래하는 시다. 예언자들의 언어는 논리로 설명되지 않는다. 그들의 시는 불타는 심판과 다시 세울 새날을 동시에 비춘다.
욥기는 인간 고통의 심연을 시로 풀어낸 대서사시다. 인간의 고난과 신의 침묵 앞에서 시는 질문으로 기도한다. 전도서의 “헛되고 헛되다”라는 단순한 허무가 아니라 인간을 일깨우는 잠언이다. 아가서의 사랑 노래는 육체적 열정과 영적 신비가 겹쳐져, 신과 인간의 친밀함을 은유한다. 성서 속 시는 지혜와 사랑, 인간과 신 사이의 미묘한 간격을 탐험하는 길이다.
갈릴리 언덕에서 예수는 시인이었다. 겨자씨 한 알, 길가의 들꽃, 잃은 양과 집을 나간 아들,비유는 모두 시적 상징으로 가득하다. 논리의 설교가 아니라 이미지의 시어로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비유는 이해보다 직관을 열고, 제자들을 믿음의 자리로 이끈다. 복음은 결국 시가 되어 우리 영혼을 두드린다.
십자가는 절규와 침묵이 교차하는 궁극의 시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는 절규는 가장 깊은 어둠 속에서 터져나온 인간의 음성이다. 그러나 사흘 후 빈 무덤은 말없이 부활의 시를 읊는다. 부활은 설명을 넘어서는 시적 사건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며, 사랑이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는 이 시는 지금도 우리 마음을 떨리게 한다.
성서를 시로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학적 취향이 아니다. 말씀을 심장의 언어로 새기는 일이다. 교리와 논증을 넘어, 하나님의 음성을 시처럼 듣고 삶의 현장에서 되새기는 일이다. 우리의 일상, 아이의 웃음, 바람에 흔들리는 풀잎, 한 줌의 눈물, 모두가 성서의 시와 맞닿아 있다. 시로 읽을 때 성서는 과거의 책이 아니라 오늘을 살리는 살아있는 노래가 된다.
성서는 시로 시작하여 시로 끝난다. 계시록의 마지막 장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라” 역시 하나의 거대한 시적 선언이다. 시는 인간의 언어가 닿을 수 없는 영역을 여는 열쇠다. 성서를 시로 읽을 때 우리는 신의 심장을 더 가까이 듣게 된다. 그리고 그 심장은, 오늘 우리 삶을 새롭게 빚어가는 시가 된다.
인류 역사상 성서만큼 많이 읽히면서 많은 사람에게 변화를 주었다. 변화의 언어들은 시의 감각의 거리를 걷는다. 신학자들은 성경의 요약을 시편으로 본다. 성경의 요약으로 보는 시편은 성서의 한가운데 편집되어있다는 것은 흥미롭다. 시편이 성경 중심에 편집된 것은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우연이라면 성령의 인도로 보아야 할까? 의도된 편집이라면 시편의 중요성이다. 성경은 사람의 이불이다. 사람의 이불은 정신이다. 세상은 말씀의 이불로 나가고 있다. 니체가 그렇고 괴테의 이야기는 늘 성서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의 이야기는 성서의 가운데서 지혜를 모아간다. 성서를 읽는다면 내일이 아닌 어제에서 안일의 꿈을 꾸지 않는다. 순간의 단맛 찰나의 향기는 눈을 감고 귀를 닫는다. 사람이 바람처럼 움직이는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들은 진리의 실상이다. 말과 행동, 하나 되는 것은 시편에 있다. 돌아보는 참회, 허공에 옷을 걸지 않는 이야기는 성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