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법 ‘양심’은 영적 작용 결과물
박성민 논설위원 편집국 국장 (진도 담당)
작성 : 2025년 09월 18일(목) 15:54 가+가-

82억명의 세계 인구 가운데 양심이 없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양심(conscience)의 실존여부를 사람의 오감으로 확인키는 어렵지만 사람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상 작동하며 사람을 사람답게 살도록 제어한다.
양심은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하는 내면에 형성된 도덕적 판단이다. 그래서 칸트는 양심을 ‘내적 재판관’으로 불렀고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성의 판단’으로 보았다.
양심은 욕망이나 충동을 제어하고 법이나 규범에 맞는 행동을 요구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제어하는 내적 제동장치이다. 양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양심에 반하는 행동을 계속할 경우 양심이 무디어 지거나 아니면 불안과 죄책감,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양심의 작용 때문이다.
양심은 사회의 법에 앞선 심리적 처벌 장치다. 연쇄살인마나 악인조차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 돌이켜 반성하는 이유도 양심 때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양심의 제어장치가 철저하게 망가졌다는 점이다. 인간만이 후회하고 자책하며 돌이켜 더나은 삶으로 나아갈수 있는 근저에는 양심이 존재한다. 현대심리학은 양심을 사회적 협력과 공감, 책임감을 촉진하는 심리적, 신경학적 기능이라고 판단한다.
오직 인간에게만 존재하는 양심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진화론적, 사회론적 관점과 창조론적 관점의 두 줄기에서 양심 존재를 살펴볼수 있다.
양심을 진화적이며 생물학적 산물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양심과 유사한 수치심, 죄책감, 공감 등이 사회적 협력을 통해 발전한다는 점을 든다. 뇌과학적 입장에서도 인간의 뇌는 구조적으로 전두엽과 공감능력,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고 미래 결과를 예측하는 능력이 진화해서 양심이 생겼다고 주장한다. 진화론적 입장이다.
만약 양심이 뇌의 구조적 진화를 통해 생겨났다면 AI가 진화를 거듭해 미래의 어느 시점에 양심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뜻인데 과연 가능할까?
AI는 이미 인간의 지적수준을 넘어섰지만 양심의 흔적은 찾아볼수 없다. 입력된 명령을 실행하는 AI가 사고의 범위를 넘어서지만 양심적인 판단은 하지 못한다. 슈퍼 컴퓨터조차도 스프트웨어를 장치하지 않으면 그 기능을 하지 못한다. 사람의 양심도 마찬가지다. 양심은 태어날 때 설치된 소프트웨어다.
니체는 그의 저서 ‘도덕의 계보’에서 인간은 본래 자유롭게 본능대로 살아왔지만 사회와 국가와 종교라는 제도에 의해 개인이 길들여지면서 본능을 내부로 돌린후 죄책감과 양심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양심을 권력과 사회질서가 사람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내면장치로 진화론적이며 사회론적 관점으로 바라봤다. 무신론자다운 주장이다.
혹자는 사회 협력을 위해 양심이 진화했다고 주장하나 도덕이나 규범을 지킬수 있는 능력이 양심이 존재하지 않으면 불가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뇌의 다양한 기능이 있을지라도 도덕적 판단은 오로지 양심에서 나온다.
그러면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들로 구성된 사회가 가능할까? 양심이 없는 사람은 공감능력이 없으며, 자기 중심적이며 충동적인 성향으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무신론자 니체조차도 양심이 없으면 공동체 구성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범죄와 자기중심적인 성향으로 상호간에 신뢰감이 사라져 협력 불능상태에 빠지고 각 개인은 공동체의 위협요인이 된다. 사회가 해체된다는 의미다. 양심이 존재하기에 사회구성이 가능하다.
양심이 없는 인간은 합리적인 계산에 능하는 지능을 가진 동물에 가깝고 사회적 관계나 도덕적 책임을 감당하지도 할수도 없는 존재이다. 양심이 없기에 신이 존재해도 신과 단절된 상태에서 살게 된다.
성경에서 ‘죄 삯은 사망’이라는 뜻은 죄인이 죽음이후 심판을 받고 둘째 사망 불못에 떨어진다는 경고이다. 이 경고를 받아들이는 전제조건이 양심 소유이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을 갖지 못하면 성경에 기록된 영생의 길을 알지 못하기에 갈수도 없다. 창조주는 인간에게 신의 성품중 영적 작용인 양심을 주어 스스로 행위나 생각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게 했다.
양심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생겨나는 사회적, 진화적 산물이 아니라 ‘신의 법’ 특성을 반영한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법이 인간 마음에 새겨진 흔적으로 사회가 타락해도 양심은 인간 내면에서 절대성을 증거한다”고 가장 쉽고도 정확하게 양심을 설명했다. 양심은 영적 작용의 결과물이며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작용하는 신의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