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없는 한국, 불신이 남긴 상처와 그 회복의 과제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9월 16일(화) 16:50 가+가-

한국 사회 곳곳이 불신(不信)의 늪에 빠져있다. 정치·언론·사법·부동산·이웃 관계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깊어졌다. 이대로라면 사회의 근본적 건강성에도 위험이 생긴다. 통계와 구체적 사건을 통해 ‘불신의 집적(集積)’을 들여다보고, 회복을 위한 길을 모색해 본다.
글로벌 여론 조사에서 한국인의 사회적 신뢰도는 낮은 수준이다. 예컨대, ‘낯선 사람을 신뢰한다’라는 응답 비율이 26% 수준으로, 조사 대상 국가 평균인 약 47%에 한참 못 미친다. 이는 한국행정연구원 등 국내 공공기관과 민간 조사에서도 반복 확인되는 추세다. 언론·정치·사법 등 주요 사회 주체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 지수도 30~40%대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특히 낮다. 일부 국제 조사에서는 ‘언론 보도가 공정하다’라고 응답한 비율이 30% 이하인 경우가 잦고, 뉴스의 객관성과 사실 확인(fact checking)에 대한 의문이 자주 제기된다. 정치에 대한 기대 역시 크지만, 정당과 국회의원, 정부 정책에 대한 평가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정치인과 제도에 대한 불신이 커진다.
공공기관 직원이 사전 정보를 활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무너졌다. 국민은 “공공의 책임”을 요구하지만, 투명성과 책임성을 보여주지 못할 때 불신감이 폭발한다.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의 수사 및 판결 과정에서 ‘특혜’ 혹은 ‘봐주기’ 의혹이 불거질 때가 많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표현이 공론화되는 배경이다. 이러한 의혹은 제도적 신뢰 회복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최근 재판 중인 사항들을 국민의 여론은 믿지 못하는 상황이다. 국민과 헌재가 상당 부분 결정을 한 부분은 법적 정리를 하면 된다. 그러나 법은 늘어져서 불신을 갖는다.
자극적 보도, 선정성 경쟁, 진실검증 부족 등이 언론 불신의 원인으로 지적된다. 더구나 디지털 미디어·SNS 확산으로 정보 왜곡 가능성이 커졌고, 어느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를 판단하기 어려운 사회가 되었다. 사회적 신뢰(social trust) 지표에서 한국은 낯선 이웃과의 상호작용이나 도움 가능성에 대해 낮은 점수를 받는다. 공동체 활동, 자발적 협력보다는 서로 경계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불신이 만연하면 단순히 분위기가 나빠지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결과들이 뒤따른다. 방역, 보건, 복지, 주택 정책 등이 국민 참여 없이는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 불신이 높을수록 정책의 실행 가능성과 순응도가 떨어진다.
서로 다른 정보 채널, 서로 다른 경험, 서로 다른 인식이 공론장의 분열을 심화시킨다. 사회 갈등이 일상화되고, 소수가 목소리를 장악하거나 사회적 소외감이 확대된다.
국민이 제도를 믿지 못하면 투표 등 제도적 참여가 줄거나 극단적 선택으로 기울 수 있다. 이는 정치적 불신이 지속할 경우 민주 제도의 정당성 자체를 약화할 수 있다.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단기적 수술이 아닌 장기적이고 일관된 노력이 필요하다. 다음 네 가지 방향을 제안한다. 예산 배분, 정책 수립 과정, 공공기관 운영 기록 등을 가능한 한 공개하고, 국민이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정보 공개는 단순히 문서를 푸는 것만이 아니라 이해 가능한 언어와 매체를 통한 설명을 포함해야 한다.
오보나 편향 기사에 대한 언론의 내부 책임 시스템, 사법부의 판결 및 수사 과정의 공개성 강화, 공기업·공공기관의 윤리 감시 및 제재 체계 확립이 중요하다.
학교 교육뿐 아니라 성인 대상 평생교육, 커뮤니티 중심 교육을 통해 정보 출처를 검증하고 뉴스와 의견을 구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지역 단위의 주민 참여 정책, 공공서비스 약속 이행, 공적 책임자의 약속 준수 사례 등이 쌓이면 신뢰의 기반이 회복된다. 국민이 변화 가능성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불신은 한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적 경험의 누적이다. 통계와 사례가 말하듯, 한국은 현재 ‘신뢰의 부재’를 극복해야 할 갈림길에 서 있다. 우리 사회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말뿐인 약속보다 실질적 행동, 외침보다 일상의 진실이 필요하다. 불신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지만, 신뢰의 씨앗을 함께 뿌릴 때 사회는 다시 건강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