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유튜버 이용률 87.9% 세계 상위권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9월 09일(화) 16:11 가+가-

21세기의 미디어 지형을 가장 극적으로 바꾼 것은 ‘유튜버’라는 새로운 존재다. 불과 십여 년 전만 해도 방송국이나 신문사가 독점하던 공적 담론의 자리를 이제는 개인이 스마트폰 하나로 파고든다. 국가마다 그 양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으로 유튜버 활동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자 동시에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는 위험 요소로도 작동한다. 나라별 유튜버 활동 양상과 그 장단점을 조망하며, 우리가 이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생각해보고자 한다.
미국은 유튜브가 가장 활발하게 성장한 땅이다. 정치·문화·종교 분야를 가리지 않고 ‘1인 미디어’가 여론 형성에 큰 힘을 발휘한다. 장점은 분명하다. 기성 언론이 외면한 목소리, 지역 공동체의 작은 이야기, 소수자의 경험이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로 퍼진다. 민주주의의 풀뿌리 확장이라는 긍정적 의미가 크다.
단점 또한 뚜렷하게 드러낸다. 미국 대선 때마다 반복되는 ‘가짜뉴스’ 논란은 상당 부분 유튜브 발이다. 알고리즘이 자극적 콘텐츠를 추천하는 구조 탓에 극우·극좌 채널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는 민주주의의 토대를 이루는 ‘합리적 공론장’을 흔드는 결과를 낳는다.
한국은 유튜브 이용률 87.9%로 세계 최상위권에 속한다. 전 세대가 일상처럼 유튜브를 사용하며, 특히 정치 유튜버와 종교 유튜버가 여론 지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장점은 의제 설정의 다양성이다. 기성 언론이 다루지 못한 민생 문제, 지역 이슈, 개인의 목소리가 빠르게 파급된다. 단점은 과도한 정치화와 이념 전쟁이다. 특정 진영 유튜버들이 구독자를 기반으로 극단적 메시지를 강화하며, 사회적 분열을 키운다. 교회와 신앙 공동체까지 유튜브 전쟁터로 끌려 들어가는 현상도 목격된다.
일본은 다른 나라와 달리 정치적 발언보다는 생활형·취미형 콘텐츠가 강세다. 게임, 음식, 애니메이션 관련 유튜버가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끼친다. 일본 특유의 ‘공동체 질서’와 무관하지 않다. 지나친 정치 논쟁을 경계하고, 오락과 소비 중심의 콘텐츠를 선호하는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장점은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고 문화 산업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점이다. 단점은, 유튜브라는 공론장이 사회 문제를 비판적으로 논의하는 장으로 활용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민주적 토론 기능이 위축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은 유튜브 침투율이 매우 높다. 젊은 세대가 정치적 의사 표현의 창구로 활용한다. 이는 민주화의 통로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문화 교류의 장을 열기도 한다. 동시에 국가 권력이 이를 자세히 감시한다. 일부 국가는 유튜브를 통제하거나, 비판적 유튜버를 법적으로 탄압한다. 결국, 유튜브는 자유와 검열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공간이 된다. 브라질과 멕시코에서는 유튜버가 사회운동과 시민 저항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부정부패 폭로, 환경 문제 제기, 인권 보호 활동이 유튜브를 통해 퍼진다. 이는 전통 언론이 권력에 예속된 상황에서 유튜브가 사실상의 대안 언론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장점이 크다.
동시에 선동과 폭력적 시위 동원에도 유튜브가 이용된다. 브라질 전 대통령 볼소나루를 지지하는 극우 유튜버들이 그 대표적 사례다. 결국,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과 사회를 분열시키는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
나라별 사례를 통해 드러나는 유튜버 활동의 장점도 드러난다.
언론 다양성 확대와 표현의 자유 증진. 개인의 창의성과 자율성 강화. 지역·소수자의 목소리를 전 세계와 공유하는 것을 보인다.
단점도 뚜렷하다. 자극적·극단적 콘텐츠 쏠림, 가짜뉴스와 혐오 발언 확산·사회 분열과 민주주의 위기. 국가 권력에 의한 검열 및 탄압. 즉, 유튜브는 자유와 위험이 공존하는 공론장이다. 유튜버의 나라별 활동을 살펴보면, 결국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유튜브라는 공간은 스스로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알고리즘과 사람의 욕망이 얽힌 권력 공간이다. 따라서 유튜버 개인은 책임 있는 언어와 검증된 정보를 전해야 하고, 사회는 투명한 규제와 교육을 통해 극단화와 혐오를 막아야 한다.
21세기, 유튜브는 새로운 ‘세계의 광장’이다. 그러나 그 광장이 분열의 무대가 될지, 공존의 장이 될지는 각 나라, 그리고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