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향 상처로 피워낸 교훈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9월 02일(화) 15:50 가+가-

침향(沈香)은 동남아시아의 열대 숲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얻어진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향을 내는 것은 아니다. 도끼에 찍히거나 벌레에 갉히는 등 깊은 상처를 입은 나무만이 수지를 분비하고, 그 상처가 수십 년, 수백 년의 세월 동안 응고되어 특별한 향기를 품는다. 고통의 흔적이야말로 침향의 시작이다. 아무 일 없는 나무는 그저 평범한 목재로 남지만, 수많은 상처와 긴 세월을 이겨낸 나무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향을 남긴다.
삶 또한 다르지 않다. 누구나 평탄한 길을 바라지만, 진정한 울림은 상처를 통과한 사람에게서 피어난다. 좌절을 겪은 사람의 말에는 쉽게 휘발되지 않는 무게가 있다. 실패와 상처는 흔히 숨기고 싶은 부분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야말로 한 인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침향의 향기는 단순한 향이 아니라, 고통을 지나온 흔적이 응축된 울림이다.
오늘의 사회는 상처를 드러내는 것을 꺼린다. 미디어는 흠 없는 얼굴, 성공한 경력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상처와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는 수많은 이들이 있다. 청년 세대의 좌절, 노동 현장의 아픔, 고령화 사회의 외로움은 침향처럼 우리 시대가 품고 있는 상처다. 이 문제들을 숨긴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처를 마주하고 그것을 향기로 바꿀 수 있는 길을 모색할 때, 사회는 더 성숙해질 수 있다.
상처가 모두 향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아픔을 원망으로 남겨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것을 인내와 성찰로 전환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 예술가의 작품, 작가의 문장,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향기는 대개 그들이 겪은 고통의 깊이와 연결된다. 침향이 오랜 시간에 걸쳐 상처를 품어내듯, 사람 또한 고통을 지혜로 바꾸는 과정을 통해 향기를 남길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업적보다 오래 남는 것은 한 사람의 향기다. 권력으로 세상을 지배한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이름조차 잊히지만, 고통을 견디며 타인을 위로한 사람의 향기는 오래도록 이어진다. 사회 역시 화려한 성공의 순간보다, 위기와 상처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로 평가된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상처 앞에 서 있다. 그것을 원망으로 남길 것인지, 아니면 세월 속에서 향기로 바꿀 것인지는 각자의 몫이다. 옛말에 이슬 먹은 사슴은 사향을 만들고 반대로 독사는 독을 만든다는 경우와 같다.
‘깊은 어둠 속에서/천 년의 상처를 품고/나무는 침묵으로 썩어갔다//비와 바람, 번개의 흔적/세월의 무게가 켜켜이 스며들어/상처는 더 깊어지고/그 속에서 향은 태어났다//불을 만날 때 드러나는/그윽한 향기//침묵의 나무가 세상에 흘리는/눈물의 기도//사람들은 그것을 귀히 여겨/하늘 앞에 올리고/마음의 어둠을 녹이며/건강의 힘을 만든다//침향은 말/상처 없이는 향기 없고/고통 없이는 은혜 없다//깊이 꺼져 들어간 어둠에서야/참된 향이 피어난다’ 최창일 시<침향> 전문
침향은 상처에서 시작한다. 깊이 팬 자리에 수십 년의 시간이 스며들어야 비로소 향이 된다. 인간의 삶과 사회도 마찬가지다. 상처 없는 평탄함이 아니라, 상처를 어떻게 견디고 무엇으로 채워 넣는가가 중요한 법이다. 침향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것을 통해서만 피워낼 수 있는 향기가 있다는 것. 그것이 곧 상처로 피워낸 인간의 품격이다. 테레사 수녀, 마틴 루터킹 목사 같은 이들은 침향과 같다. 타인의 고통을 자기 몫처럼 감당하여 살았다. 유관순, 안중근 의사처럼 민족의 아픔을 함께 짊어진 인문도 침향의 삶이다. 인간은 누구나 상처를 지니지만, 그것을 감추지 않고 타인의 상처를 끌어안는 순간, 비로써 침향과 같은 타인을 치료하게 된다. 위대함은, 치유함은 권세가 아니라 섬김과 공감에서 나온다. 타인의 상처를 내 가슴에 눕히고 눈물 위에 다리를 놓은 자, 그는 이름이 크지 않아도 세상은 그를 큰 자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