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역할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5년 08월 20일(수) 15:57 가+가-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를 비롯한 ‘ET’ ‘쥬라기 공원’ 등 수많은 히트 영화를 세계 곳곳에 뿌려 할리우드의 황금기를 가져온 영화감독 스필버그. 그의 영화 인생은 아버지 아놀드와 함께 시작됐습니다.
아놀드는 7살 때부터 공상 과학소설을 즐겨 읽고 10살 때 벌써 라디오를 조립할 정도로 과학적 재능이 풍부했습니다.
하지만 집안이 가난해 대학 진학 기회를 놓치고 1930년대 초에 외사촌 형이 경영하던 백화점에서 부지배인으로 일했습니다.
외사촌 형은 어느 날 갓 나온 8mm 영화 카메라를 샀다가 까다로운 사용법에 질린 나머지 아놀드에게 줘버렸습니다.
아놀드(스필버그 감독의 아버지)는 이 카메라로 집안 대소사를 찍었습니다.
1957년 2월 어느 날 밤, 아놀드는 곤히 잠든 10살짜리 맏아들 스티븐을 깨우더니 보온병과 담요를 주섬주섬 챙겨 차에 싣고 교외로 달렸습니다.
반 시간쯤 지나 사방이 탁 트인 사막에 이르렀는데 수백 명의 군중이 도로변에 담요를 깔고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가리키는 하늘 저쪽에서는 수많은 별똥별이 소나기처럼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한테서 들은 혜성 이야기는 과학에 대한 스티븐의 흥미를 자극해 훗날 공상과학 소재를 즐겨 다루는 밑거름이 됐습니다.
가족여행을 떠날 때마다 스티븐은 모든 장면을 아버지 카메라에 담기 바빴습니다.
집에서 출발할 때도 다른 식구들이 차에 다 타고 떠나는 장면을 담기 위해 집 앞 도로에 엎드려 초점을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버지는 그럴 때마다 조수 노릇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제작한 극영화에 동네 개구쟁이들과 함께 조연으로 출연했는가 하면 스티븐이 중학교 때에는 항공기 등 영화 소도구를 빌리는 교섭까지 도와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아들에게 영롱한 꿈을 심어주고 프로의 세계로 이끈 아버지였습니다.
브라질 축구영웅 펠레는 축구 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힙니다. 출중한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그의 경기 매너였습니다. 언제나 상대방 선수를 적이 아닌 선의의 경쟁자로 대했고, 관중들에겐 진심으로 존중을 표했습니다. 아무리 격렬한 경기와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흥분하지 않고, 감정을 다스릴 줄 아는 경기장의 신사였습니다. 이같이 대단한 감정조절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은 그의 아버지 덕분이었습니다.
펠레는 어릴 때부터 축구선수였던 아버지의 경기를 자주 보러 갔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드리블로 상대 선수를 제쳤지만 머뭇머뭇하다가 골을 넣지 못했습니다. 펠레 옆에 앉아 있던 관중들이 아버지를 향해 욕과 야유를 퍼부었습니다. 이에 격분한 펠레는 옆 관중들과 싸움을 벌여 주먹다짐 직전까지 갔으나 간신히 진정됐습니다.
그날 밤, 아버지는 펠레에게 정중히 타일렀습니다.
“화가 나는 것은 스스로 화가 났기 때문이다. 화가 난다고 남에게 시비를 거느니 제 몸을 걷어차는 게 낫다. 경기장에서 뛸 때는 화를 다스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기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상대방을 이길 수 없습니다” 펠레는 그 후 축구선수가 되어서도 아버지의 충고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습니다.
어느 날 펠레는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다가 아버지에게 들켰습니다. “넌 축구에 재능이 있고, 일류선수로 성공할 가능성은 있지만 담배를 피우면 아무것도 될 수 없다. 90분 동안 경기장을 누빌 수 있는 건강과 체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네 스스로 선택해라. 만일 위대한 축구선수를 포기하고 계속 담배를 피울 생각이면 이 돈으로 사서 피우도록 하라” 아버지는 지갑에서 돈을 꺼내 펠레에게 건넸다. 펠레는 두 번 다시 담배를 피우지 않았습니다.
로마에는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라는 법률이 있습니다.
그 말의 뜻은 ‘아버지의 권한’ 이라는 뜻입니다.
자녀가 갓 태어나면 아버지의 양발 사이에 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허리를 굽혀 그 아이를 안아 올리면 그 아이는 가정에서 기르게 되지만 반대로 그 아버지가 돌아서서 가 버리면 그 아이는 버려져 버렸습니다.
한 마디로 자식의 운명을 아버지에게 맡기는 법이었습니다. 로마의 이 법은 자식을 아버지의 소유물로 보는 악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만큼 아버지의 절대 권위가 인정되는 법이었으며 아버지의 책임이 큰 법이었습니다.
코넬대학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미국의 아버지들이 자녀와 같이 놀아주거나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평균 30초라고 합니다. 큰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