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방큰돌고래’에게 법인격을
김양용 철학박사
작성 : 2025년 08월 17일(일) 15:32 가+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나 식물이 실정법상 법적 소송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인간이 아닌 자연물에 법적 권리가 있느냐는 문제는 인간 중심의 근시안적 세계관으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그만큼 지구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는 개방적 태도는 차원 높은 윤리의식의 발현이다. 그런데 유럽에는 인격체의 권리를 부여받은 자연 호수가 있다. 바로 스페인의 인기 휴양지였던 ‘마르 메노르 석호’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 ‘21년 물고기 수만 마리가 떼죽음을 당한 것을 계기로 법률로 법인격 (legal personality)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생태계 보존 가치가 높은 경포호 등도 지구공동체로서 인격적 권리를 가질 수 있을까? 2019년 세계 최초로 뉴질랜드 ‘황거누이강’에 법인격을 부여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국민의 건강과 쾌적한 삶을 위한 ‘자연환경보전법’(1991.12.31.)이 제정되었지만, 해당 법조문 어디에도 자연물에게 법적 권리는 없다.
우리는 매일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를 결정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행위의 규범은 절대적이 아니라 사회 변화에 따라 변화한다. 따라서 인간의 윤리나 법률은 사회 변화와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법학의 연구도 과거 노예제나 식민주의라는 쟁점이 신분이나 경제 불평등으로 대체 되었고, 급기야 기후 위기 앞에 ‘지구공동체’라는 주제가 등장하였다. 자연을 법률적 권리 주체로 인정하는 법체계가 바로 지구법학(Earth jurisprudence)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의 권리를 넘어서 지구 전체의 생명과 가치에 주목하는 지구 법학의 주된 논점은 무엇인가? 이에 대해 지구 법학자들은 지구중심적 세계관과 법체계의 권리문제, 그리고 생태친화적 법학의 현실화 과제를 강조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대멸종이라는 문명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인간중심의 세계관이 아니라 지구 중심의 세계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지구법학은 오늘날의 생태계 위기가 인간 중심의 사고와 행동에서 비롯되었으며, 따라서 부분적이고 현상적인 개선으로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무엇보다 제도적 변화의 열쇠가 되는 법률적 주장이라는 점이 이목을 끈다.
이는 전통 법학이 중시해 온 천부인권 즉 인간의 권리 범주를 과감히 탈피하려는 시도이며, 법적 권리 주체를 지구공동체로 확장하려는 지구중심적 세계관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이 자연물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자연물 자체가 본래부터 권리를 가졌다고 본다.
지구법학은 근본적으로 환경법과 다르다. 환경법은 인간의 경제활동으로 인한 환경오염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근거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이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법은 권리 주체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환경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한다. 하지만 지구법학은 환경법의 대안을 찾기 위한 ‘자연의 권리 운동’이며, 자연과 인간이 함께 참여하는 지구공동체의 거버넌스를 모색한다. 이 지구법학은 미국의 문명사학자 토마스 베리(Thomas Berry)의 <권리의 기원>에서 유래하여 최근 국내 법학적성시험의 단골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이나 권리를 넘어서 지구 전체의 생명과 가치가 법률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 지구법학이다.
전통적으로 법학은 사회질서와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인간의 권리를 중심으로 자유와 평등의 문제를 다뤄왔다. 문제는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반영한 기존 법학에서 권리의 범위나 주체를 ‘인간’에 한정시킨다는 점이다. 실제 유엔 인권선언과 헌법에는 ‘사람’만이 언급되고 있다. ‘모든 사람(국민)은 ~ 한 권리를 가진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인간의 권리만을 다룬다. 이러한 인간중심의 권리의식이 자연 생태계의 파괴와 기후위기를 낳은 것이다. 따라서 지구법학은 권리의 대상이나 주체가 ‘모든 존재는~한 권리를 가진다’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학문적으로 지구중심 즉 생태중심의 법이론 체계가 갖춰졌더라도 현실적 입법사례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2008년 에콰도르에서 ‘자연의 권리’를 헌법에 명기한 이래, 뉴질랜드의 황거누이강(江), 스페인의 ‘마르 메노르 석호’ 등에게 법인격(legal personality)을 부여한 판례를 돌아 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우리도 멸종 위기종 ‘남방큰돌고래’를 생태 법인 지정을 지속적으로 꾀하고 있다. 이 과업에 우리 모두 생태적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자본주의가 정점에 이른 우리로서 자연물을 소유와 관리의 관점이 아닌 인격체로서 권리를 부여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다.
이제 인간의 권리를 넘어선 지구 전체의 생명과 가치에 대한 주목은 법학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지난 2001년 경남 양산 천성산의 ‘도룡뇽 소송’에서 ‘자연물 도룡뇽은 법적으로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는 후대에 지극히 인간 중심의 몰지각한 판결이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이 점이 우리가 ‘인간중심의 법의식’을 통렬히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국민 대다수가 자연의 권리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때 비로소 지구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생태 위기에 대한 법제적 대응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지구중심적 세계관에 기초한 생태적 지혜를 일깨워 생태친화적 입법사례를 현실화하는 일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제주 앞바다의 ‘남방큰돌고래’에게 반드시 법인격을 부여하여 우리 스스로 지구공동체가 공생하는 소위 ‘K-ECO’의 길을 열어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