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시는 패션 운동화의 친구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8월 05일(화) 15:47 가+가-
과거였다면 패션의 금기를 어긴 ‘무례한 실수’로 치부되었을 것이다. 격식을 갖춘 남성이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예의를 모른다는 것이고, 패션 감각이 없다는 비난의 대상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길거리든, 회의장이든, 심지어 국제 정상회담의 일부 장면에서도 운동화를 신은 정장 차림의 남성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단순한 유행을 넘어서는 문화적 전환의 징후다.
시대는 점점 더 유연해지고, 경계는 흐려지고 있다. 그 경계선 위를 걷는 사람들이 바로 현대적 감각의 패션을 이끌고 있다.
슈트와 운동화, 이 이질적 조합은 시대정신이 만든 결과물이다.
사람들은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출근길엔 기업의 일원, 퇴근 후엔 창작자, 주말엔 여행자. 다층적 삶은 유니폼처럼 고정된 스타일을 거부하게 만든다. 정장의 단단함은 자신감을, 운동화의 부드러움은 자유를 상징한다. 이 둘의 만남은 오늘날 현대인이 바라는 삶의 방향성을 의복이라는 매개로 표현하는 행위다.
정장과 운동화의 조합이 패션의 전면에 등장한 시점은 2000년대 초 유럽의 런웨이에서였다.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디자이너들은 고전적인 슈트에 러닝화나 발목 운동화를 매치하며 전통의 경직성을 의도적으로 해체했다. 이 실험적 조합은 ‘파격’이라 불렸지만 동시에 ‘현대성’이라는 찬사도 받았다.
실용성과 이동성을 중시하는 도시인의 삶에서, 딱딱한 구두는 부담이었다. ‘스타일을 위한 고통’은 이제 거부의 대상이 되었고, 나이키·아디다스·발렌시아가 같은 브랜드들은 그 틈을 비집고 들어와 고급 운동화를 전면에 내세웠다. ‘운동화가 정장을 만나면서도 세련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이 입증된 것이다.
전 세계 신발 생산량은 약 240억 켤레로 그중 운동화는 대략 5% 정도, 연간 약 11억~12억 켤레 규모에 해당한다. 2022~2023년 기준으로 전 세계 스니커즈 생산량은 약 12억 켤레로 안정화되었으며, 인구당 평균 0.16켤레 정도가 생산되는 수준이다.
2018년(약 12억 켤레)과 비교해 거의 유지되거나 소폭 증가한 수준이며, 2026년에는 약 13억 켤레, 2028년에는 약 13.8억 켤레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정장에 운동화를 신는다는 것은, 규범에의 저항이자 개성의 선언이다. MZ 세대는 ‘정답 없는 세상’에서 자율성과 창의성을 중시한다. 스타일에서도 같은 철학을 반영하고 있다. 딱딱한 규율보다 자신의 감각을 믿는 세대, 그들이 선택한 것이 바로 이 ‘혼종 패션’이다. 패션의 민주화는 더는 디자이너나 브랜드에 의해 강제되지 않는다. 누구든 자신의 규정을 만들고, 이를 SNS를 통해 전파한다. 정장+운동화는 이 자율성과 민주화의 상징이다.
그렇다고 모든 정장+운동화 스타일이 세련된 것은 아니다. 무너뜨리되, 조율할 줄 알아야 한다. 정장이 갖는 고전적임과 운동화의 격식 없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단지 ‘어색한 혼합’으로 끝나버린다. 여기에는 미적 감각과 세심한 스타일링이 필요하다.
예컨대, 테이퍼들 슬랙스나 짧은 바지는 운동화와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해준다. 색채는 블랙·화이트·짙은 남색처럼 정장의 색채를 방해하지 않는 쪽이 좋다. 운동화의 소재도 가죽이나 스웨이드 등 고급 소재일수록 정장과 잘 어울린다.
정장은 개성을 드러내되 품격을 유지하는 선에서, 운동화는 자유를 추구하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선에서 조율되어야 한다. 이것이 ‘정장+운동화’ 조합의 진정한 품격이다.
서구적 근대가 형성한 복장 규정은 신분질서를 반영하는 일종의 종교적 상징체계였다. 정장은 ‘지배계급의 복장’이었고, 구두는 ‘세련됨의 증거’였다.
21세기의 새로운 신발은 ‘유연함과 실용성’이다. 패션은 더 위계가 아니라 평등과 감각의 언어로 말한다. 정장을 입고 운동화를 신는 이는 패션의 법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언어를 새롭게 쓰는 사람이다.
정장과 운동화는 각기 다른 시간의 언어다. 전통과 현대, 규범과 자유, 형식과 창의성. 이 둘의 결합은 마치 고전적인 건축물 앞을 달리는 전동킥보드처럼, 시대적 충돌이자 조화다. 이제 묻지 않는다. “운동화를 신었는데 왜 정장을 입었냐”고.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정장을 입었기에 운동화를 신었다”라고 패션은 변덕이 아니라 감각이다.
정장+운동화 스타일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방식, 격식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도 자유를 잃지 않으려는 삶의 태도’를 상징한다. 스타일은 지금, 유연한 삶의 리듬에 맞춰 걷고 있다. 시는 패션 운동화와 친하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