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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과 은혜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5년 07월 23일(수) 15:56 가+가-
아프리카에서 평생 선교사로 일생을 마친 아프리카 선교의 선구자이자 개척자이며, 대영 제국의 자랑인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16년간 아프리카 밀림에서 선교하다가 잠시 영국에 귀국했습니다.
리빙스턴은 스물일곱 번이나 말라리아에 걸려 사경을 헤맸으며 그 당시에도 아직 말라리아에서 매우 회복하지 않은 연약한 몸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자에게 물린 한쪽 어깨와 팔은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그 팔은 그저 몸통에 힘없이 매달려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을 한 채 그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설교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설교 중에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아프리카에 들어가 그곳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 그 일을 위해서 나를 불러주셨다는 사실에 늘 즐거워했고 감사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그곳에서 많은 희생을 했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을 했지만, 도무지 갚을 수 없는 큰 빚에서 지극히 작은 부분을 갚았을 뿐인데 이것을 희생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장차 영광스러운 소망과 복된 상급을 약속받는 일을 하는 것인데 그것이 어찌 희생이겠습니까? 그런 말과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절대로 희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특권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그리고 우리를 위해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때 그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절대로 희생하지 않았습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선교하는 것이 희생이 아니고 특권이라는 생각, 얼마나 놀라운 고백입니까?
리빙스턴이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침대 옆에 기대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손때 묻은 작은 성경이 놓여 있었고 그 여백에는 ‘존귀하신 분의 말씀’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중종조의 명신으로 성격이 온건 겸허했고 특별히 청백리로 유명했던 반석평(潘碩枰,?-1540)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원래 남의 집 종으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인간 이래되 인간 취급을 못받으며 살도록 운명지어진 사람이란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세상 만 사람이 자기를 멸시하고 짓밟는다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은 기어이 스스로를 키워야 한다고 결심하고 어려서부터 악착스럽게 자신의 인격적인 성장과 학문적인 성장을 위하여 남모르는 수고를 거듭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새 삶의 기회를 주어지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주경야독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 가면서 익힌 그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 이 참판은 아무 조건 없이 그의 종 문서를 불태워 종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면서 아들 없고 재산 없는 어느 양반집 수양아들이 되도록 주선해 주었던 것입니다.
이리하여 예전엔 감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고 그 결과 그는 당당하게 급제하여 출세 가도를 달리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형조판서로까지 승진했습니다.
어느 날이다. 그가 한양 거리를 지나다가 옛 주인 이 참판의 아들 이오성(李五成)이 거지 몰골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즉시 그 사람에게 큰절하며 “어르신 저를 몰라 모시겠습니까? 저는 당신의 종 반석평이라는 놈이올시다”라고 했습니다.
백주 대낮 한양 대로에서 형조판서 대감이 거지 같은 사람 앞에 넙죽 엎드려 이런 말을 하고 있으니 어찌 예사로운 일이겠는가?
그 당시 관례에 의하면 자기의 옛 신분을 밝힌다는 것은 곧 지금까지의 피눈물로 쌓아올 린 자기의 모든 특권을 박탈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그는 기군망상(欺君罔上)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온갖 고초를 겪어야 하고 아울러 즉각 옛날의 신분으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어찌 그만한 사리를 모를 사람인가? 그러나 그는 모든 것 이전에 은혜부터 갚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뒷날, 이 엄청난 반 대감의 인격에 감동한 고관들의 주선과 임금의 특별한 배려로 그의 사표는 반려되었고 오히려 그가 추천한 이 오성이 사옹원 별좌라는 벼슬을 얻게 되었다는 미담이 우리 역사 속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 처해서도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를 애써 키우며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받은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는 그의 삶과 인격을 통하여 우리는 그에게서 느낄 수 있는 멋진 영적 향취를 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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