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동물상이 말하는 문화적 상징성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7월 22일(화) 15:58 가+가-

캠퍼스를 산책하다 마주한 조각상이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순간이 있다. 그 조각이 단순한 장식이 아닌, 한 시대의 정신과 교육철학을 상징한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우리는 물음을 던지게 된다. 왜 대학은 동물을 형상화한 상징을 세우는가? 그 동물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고대 이래 인간은 동물을 통해 자신의 욕망과 이상을 투사해왔다.
이집트의 스핑크스, 중세 문장의 사자, 동양의 용과 봉황에 이르기까지, 동물은 현실의 생물이면서 동시에 상징적 존재였다. 명문대학들이 세운 동물상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인간 이성의 이상을 담는 상징 동물들이며, 그 대학이 품고 있는 철학의 조형물이다.
예일대학교의 불도그 ‘핸즈섬 댄’은 끈기, 충성, 도전을 상징한다. 예일 캠퍼스에 실제로 거주하는 이 불도그는 마치 학문의 수호신처럼 존재감을 뽐낸다.
학생들은 그에게 손을 흔들고, 전통을 계승하며, 자신도 그처럼 당당한 존재가 되기를 꿈꾼다.
프린스턴대학교의 호랑이상은 더욱 상징적이다. 호랑이는 단지 용맹함의 상징이 아니다. 프린스턴이 지향하는 건 고귀한 독립성, 곧 남과 구별되는 지적 자율성과 명예의식이다. 캠퍼스에 세워진 호랑이는 언제나 정면을 응시하며 침묵 속에서 권위를 발산한다.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는 단과대학마다 다른 동물을 상징으로 삼고 있다. 유니콘, 사자, 독수리, 그리핀, 심지어 용까지. 이는 단지 판타지적 유물이 아니다. 이 동물들은 중세 지성의 상징체계로, 각 대학의 철학과 종교, 사회적 권위의 지도를 형상화한 기호다.
유니콘은 순수함과 진리를, 용은 지혜의 수호와 통찰, 그리핀은 육체와 정신의 결합한 권위를 상징한다. 옥스퍼드의 벽화나 문장학에서 발견되는 이 상징들은 단지 역사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캠퍼스 내 무의식적 질서와 권위 구조에 은밀하게 작동하고 있다.
미국 서부의 스탠퍼드는 이 전통에서 벗어난다. 스탠퍼드의 마스코트는 동물이 아닌 나무(Tree)다. 그 ‘나무’를 둘러싼 마스코트 행렬에는 다람쥐, 매, 곰 같은 서부 생태계의 동물들이 등장한다. 이는 새로운 상징 언어의 탄생이다. 지성과 학문을 자연, 생태, 창의로 연결짓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그 기저에 놓여 있다.
이러한 변화는 대학이 이제 단순한 계몽의 기지에서 벗어나 지구 공동체와 생명윤리의 거점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동물상도 함께 진화하는 것이다. 인간 중심주의적 상징에서 벗어나 생명공동체적 상징으로, 왕좌의 사자에서 숲속의 다람쥐로 이행하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본관 앞에 자리한 쌍룡상(雙龍像)은 또 다른 문화적 층위를 지닌다. 두 마리 용이 지혜의 구슬을 향해 마주 선 이 조각은, 유교적 질서와 한국적 민속신앙이 서양적 대학 모델과 결합하는 상징적 장면이다.
용은 권위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꿈의 이미지다. 한국적 대학 정신의 근원이 단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지혜의 균형과 이상세계에 대한 동경에 놓여 있음을 암시한다.
질문이 남는다. 과연 오늘날 대학의 동물상은 여전히 그 정신을 지키고 있는가? 혹은 단지 기념품으로 전락해버린 것이 아닌가?
상징이란 본래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장치다. 그러나 상징은 반복될수록 본래의 의미를 잃기 쉽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징을 해석하고 갱신하는 문화적 비평의 시선을 가져야 한다.
대학이 세운 동물상은 단순한 마스코트가 아니다. 그것은 시대와 지역, 전통과 상상력이 빚어낸 문명의 압축 기호다. 그리고 그 동물상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가는 그 대학이 자기 정신을 얼마나 성실하게 계승하고 있는가를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