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의 계보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7월 15일(화) 15:57 가+가-

동상이 무려 14,000기가 세워진 인물도 있다. 광장 한복판, 높다란 받침대 위에 선 누군가의 동상은 종종 말을 하지 않지만,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한다. 이 동상이 왜 이곳에 있는지, 누가 세웠고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배경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동상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정치적 언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20세기 들어, 특히 전체주의적 성격을 띤 사회주의 국가들은 동상을 국가 선전의 도구로 삼았다. 지도자의 이미지를 도시 곳곳에 세움으로써 체제의 정당성을 시각화하고, 국민에게 이념과 충성을 각인시켰다. 이와 달리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동상이 주로 시민적 존경의 표시로 세워지며, 건립 과정 또한 훨씬 자발적이다. 두 방식은 목적도, 의미도, 그 수명조차도 현저히 다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 1870~1924)이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을 이끌고 소비에트 연방을 창건한 그는, 생전에 이미 체제의 신화로 자리 잡았다. 레닌 사후, 그의 동상은 소련 전역은 물론 동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까지 퍼졌다. 1980년대 말까지 전 세계에 세워진 레닌 동상의 수는 약 14,000기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도시 광장, 기차역 앞, 학교 입구, 심지어 집단농장까지 레닌은 국민의 일상 곳곳에 ‘동상’이라는 형태로 존재했다.
단순한 존경이나 기념의 표시가 아니었다. 동상은 공산주의 국가가 보여주고자 한 ‘이상적 인간상’이자, 국가 권력의 상징이었다. 레닌 동상을 보는 일은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니라, 체제에 대한 복종과 믿음을 반복 학습하는 일이기도 했다. 소련 외에도 북한, 베트남, 쿠바, 동독, 몽골 등 각국의 중심 도시에는 레닌 동상이 세워졌다. 이념의 연대를 상징하는 지표가 되었다.
중국의 마오쩌둥(Mao Zedong) 역시 이와 유사한 사례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자이며, 문화 대혁명기의 절대 권력자인 그는 ‘위대한 조타수’로 칭송되며 신격화되었다. 1960~70년대 중국에는 공식적으로 약 7만 개 이상의 마오쩌둥 초상화와 동상이 설치된 것으로 보고된다. 그중 정식 동상은 약 2,000기 이상으로 추산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높이 30m에 이르는 초대형 마오 동상이 세워졌으며, 마오의 손짓 방향이 전국 지도자들의 동선을 정한다는 ‘설’이 퍼질 정도로 신화화가 이루어졌다.
동상의 특징은 “자발성의 결여”다. 국가가 세우고, 당이 유지하고, 시민은 거기에 순응해야 했다. 이는 곧 체제 유지와 지도자 숭배가 맞물린 정치 도구였으며, 동상은 권력의 연장선이었다. 결과적으로, 소련이 붕괴하자마자 레닌 동상들은 체제의 붕괴와 함께 대거 철거되었다.
동유럽에서는 시위대가 직접 레닌의 조각상을 끌어내리고 머리를 부수며, 새로운 시대를 선언했다.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만 철거된 레닌 동상의 수는 1,300기 이상에 이른다.
반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동상은 다른 방식으로 탄생한다. 미국의 조지 워싱턴, 링컨, 마틴 루서 킹 주니어, 유럽의 넬슨 만델라, 간디 같은 인물의 동상은 국민적 존경의 결과로 세워진다. 그 건립은 시민들의 모금, 지방 자치단체의 결의, 공청회를 통한 논의 과정을 거쳐 진행된다. 어떤 인물을 기릴 것인지를 사회가 스스로 결정한다.
영국 런던의 국회의사당 앞에 세워진 만델라 동상은 단지 남아프리카의 인물이라는 이유 만으로가 아니라, 인권과 자유의 세계적 상징이라는 공감대 위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이러한 차이는 철거 논란에서도 드러난다. 사회주의 지도자들의 동상은 체제와 운명을 함께 하지만, 시민이 세운 동상은 시대 변화에 따라 의미가 재해석되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물론 예외도 있다. 미국 남부의 로버트 리 장군 동상처럼 역사적 평가가 갈리는 경우, 철거나 보존 여부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논의의 중심에는 시민의 판단과 가치가 있다. 이는 강제와 자발의 차이이며, 체제에 의한 기념과 공동체에 의한 기억의 차이다. 한국에서도 육군사관학교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의 흉상이 철거되느니 하는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리기도 했다. 결과는 그 자리에 존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렇다면 우리는 앞으로 어떤 동상을 세워야 할까? 그 기준은 명확하다. 권력의 도구가 아닌, 기억과 가치의 기록이어야 한다. 누가 명령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기억하고자 하는 인물을 기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거대하고 화려한 동상도 시대가 바뀌면 쉽게 쓰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