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헤는 밤’ 시인이 가르쳐준 여름의 풍경과 맑음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7월 08일(화) 16:00 가+가-

최은하 시인은 시에도 선풍기가 있다 한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들으면 여름밤이 서늘한 정신이 다가온다 한다. 8월에 떠난 최은하 시인을 떠올리니 윤동주의 시 「별 헤는 밤」이 마음속에 걸어 들어온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 가을로 가는 가을이었지만 / 나는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라며 시작하는 이 시는, 계절상 가을의 정조를 담고 있지만, 시의 배경은 여름이다. ‘별이 바람에 스치는 밤’은 다름 아닌 여름밤의 풍경이다.
윤동주의 별은 덥고 숨 막히는 계절 속에서도 영혼의 투명함을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시인의 마음이다. 그는 여름을 ‘회상의 계절’이자 ‘슬픔의 그늘, 아래 맑아지는 계절’로 받아들였다. 윤동주의 여름은 단지 더운 계절이 아니라, 존재의 심연을 사색하게 하는 밤의 계절이다.「별 헤는 밤」에서 윤동주는 어릴 적 고향, 친구, 은사와 같은 구체적 이름들을 별빛 아래에 하나하나 올려놓는다. 그 추억들은 모두 여름밤의 별빛 아래에서 떠오른다. 그는 여름의 밤하늘을 하나의 성전(聖殿)처럼 여긴다. 거기서 그는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다”라는 쓸쓸함을 느끼면서도, 그 거리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망초꽃 피는 여름 계절은 유년의 감각을 자극한다. 땀과 물, 햇살과 들풀, 나무와 벌레 소리. 윤동주는 바로 그 감각을 따라 기억의 별들을 하나하나 꺼내어 시로 엮는다. 여름은 윤동주에게 있어, 어린 날의 나를 되돌아보는 순례의 시간이며, 존재의 뿌리를 확인하는 정직한 계절이다.
윤동주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는 ‘부끄러움’이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구절에서 ‘죽어가는 것’은 일제의 억압 속에서 짓밟히는 생명일 수도 있고, 진실과 정의의 부재일 수도 있다. 시인은 ‘부끄럽지 않은 삶’을 꿈꾼다. 여름밤에 별을 바라보며 결심한다. ‘부끄러움’이란 감정은 윤동주 시의 도덕적 뿌리이며, 바로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윤동주를 여전히 국민 시인으로 남게 하는 이유다.
여름이다. 별을 바라보며 우리 자신을 성찰할 수 있을까. 침묵의 여름밤, 별은 여전히 우리를 바라보며 묻는다. “너는 지금 부끄럽지 않은가?”
윤동주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시 전반에는 성서적 이미지와 기도문이 배어 있다. 「별 헤는 밤」 또한 일종의 묵상 시로 읽힌다. 시인은 별을 헤아리며 하늘을 응시하는데, 그 응시는 마치 하늘을 나는 자아의 기도를 닮아있다.
“나는 별 하나에 아름다운 말 한마디씩 불러봅니다”라고 썼지만, 그 말은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마음의 고백이고, 신 앞에서의 순결한 언어이다. 여름밤의 별빛은 그에게 하나의 계시였다. 자신에게 맡겨진 길을 걸어야 한다는 사명감.
이제는, 우리에게도 묻는다. 이 여름밤에 우리는 누구를 위해 별을 헤아리고 있는가. 우리의 사명은 어디에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따라 걷고 있는가?
2025년의 여름, 우리는 윤동주가 살던 시대보다 훨씬 자유로운 듯 보인다. 사실은 더 교묘한 억압과 소외 속에 살아간다. SNS의 잦은 소음, 분노와 혐오의 언어, 맹목적 경쟁 속에 정작 ‘하늘’을 바라볼 여유는 사라지고 있다.
윤동주는 바로 그 하늘을 바라보는 시인이었다. 별을 셈하고, 이름을 부르고, 잊지 않으려는 사람. 이 여름, 우리는 그런 시인을 다시 불러야 한다. 가만히 별을 바라보고, 삶의 근원을 돌아보며, 말과 존재의 맑음을 회복해야 한다.
동주의 시가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시대가 아무리 변 해도 “별이 바람에 스치는 밤”이라는 문장이 사람들의 영혼에 어떤 공명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여름은 별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다시 별을 기억하게 만드는 계절이다. 윤동주는 그 여름의 가장 앞선 별이었다.
이 여름, 별을 세며 시인의 길을 잠시 따라가 보자. “별 하나에 추억과 / 별 하나에 사랑과…”라는 그의 음성을 마음에 새기며, 별 하나하나에 우리가 잃어버렸던 이름들을 다시 붙여보자.
부끄러움을 잊지 않는 마음, 맑은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시인의 감수성, 그리고 침묵 가운데 들려오는 하늘의 음성. 그 모든 것이 윤동주의 여름이다. 아니다. 윤동주를 그리워하는 시인의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