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클리마투스’는 이렇게 말했다
김양용 철학박사
작성 : 2025년 06월 29일(일) 15:56 가+가-

갈수록 여름이 길어지는 기후변화 시대에 장마가 이어지고 있다. 장마가 지나면 어김없이 유례없는 폭염이 기승을 부릴 것이다.
열사병에 취약한 고령층에게는 생존의 지혜가 절박한 시기다. 인류 진화의 결정적 사건인 직립 보행 역시 기후변화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전자의 전략이었다. 이로부터 가능해진 모험적 선택은 장거리 이동, 도구 사용, 지능 발달로 빙하기에도 살아남았다.
그러나 전례 없이 혹독해지는 극한 기후에도 이전처럼 생존을 장담할 수 있을까? 이 점에서 우리는 기후위기 앞에 모험적 선택의 귀로에 선 이른바 ‘호모 클리마투스’라는 ‘기후인’이다.
‘호모 클리마투스(Homo-Climatus)’라는 말은 프랑스 고고인류학자 파스칼 피크가 창안한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인간’을 뜻하는 신조어다. 그는 “역사상 인간은 늘 태풍과 빙하기, 폭염과 가뭄을 극복해왔다”며 호모사피엔스를 기후변화에서 살아남은 종으로 본다.
필자는 인간이 끊임없이 기후변화에 맞서 진화해 왔다는 점에서 호모 클리마투스를 니이체가 삶의 목표로 제시한 ‘매번 자신을 극복하려는’ 위버멘쉬(Ubermensch)에 유비해 본다.
위버멘쉬란 어원으로 볼 때 ‘넘어선(uber)+사람(mensch)’이다. 그렇다고 초능력 인간인 슈퍼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든 것을 긍정하여, 고통마저도 자신을 성장시켜 나가는 기회로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자다. 말하자면 매번 모든 위기를 100% 이겨낼 수 없다 할지라도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 매번 ‘나아감’을 자신의 본능으로 여기는 점이 위버멘쉬와 호모 클리마투스의 공통점이다. 그렇다면 기후위기에 처한 호모 클리마투스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열쇳말로 자기극복, 운명애, 가치 창조 등을 내세울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위기 극복의 주체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근대성의 실패를 인정하며,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자본 문명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새로운 생태 패러다임으로 ‘나아감’이다.
첫째 호모 클리마투스는 자기 극복을 지향해야 한다. 미완의 존재인 인간이 ‘자신을 넘어서는 자’인 위버멘쉬(Ubermensch)를 지향하듯 호모 클리마투스도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는 ‘힘에의 의지’를 가진다. 그래서 경쟁하듯 ‘가진 자 따라잡기’에 매몰되지 않고, 기후 위기의 고통과 한계를 통해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의지를 길러 끊임없이 자신을 넘어려고 한다. 자기 극복의 존재, 그것이 호모 클리마투스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둘째 호모 클리마 투스는 자신의 처지를 긍정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그에게 탄소중립이 비관적일지라도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후 위기에 대한 비관적 상황이 무한히 반복되더라도 ‘이 순간’을 사랑하며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정신이야말로 자포자기하기 않는 실존적 자유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기 때문이다. 니체도 삶을 가장 철저히 긍정하며, 무겁게 끌어안는 자만이 진정 자유롭다 하였다. 호모 클리마투스에게도 요구되는 운명애(Amor Fati)이다.
셋째 호모 클리마투스는 스스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 스스로 인간 중심을 선언하고, 자연을 소유와 지배의 대상으로 삼아온 자신의 오류에 대한 죄의식과 혐오의 감정을 과감히 해체하고, 당당히 맞닥뜨린 위기를 헤쳐 나가는 주인으로 나서야 한다. 그의 본래 성품(本然之性)은 자기중심의 빗나간 사적 욕망보다는 인간과 자연이 공생하는 생명애(biophilia)를 지향한다.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스스로 죄인으로 간주하는 ‘노예 도덕’을 비판하고, 주인으로서 인간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그것이다. 그가 가치 창조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기존의 자본제적 사회 규범에 순응하지 않고, 스스로 삶의 의미와 가치 즉 생태적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이 되라는 말이다. 마치 스스로의 삶을 예술처럼 창조하듯이 절대적 진리, 자본의 지배가 사라진 시대를 향하여 인간 스스로 삶의 기준을 세워야 한다.
현대인은 자신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월적 가치를 화폐로 간주한다. 특히 기후위기의 근저에는 ‘돈은 신이다’는 명제 아래 물질적 욕망 추구와 무한한 성장이라는 자본의 논리가 깔려있다. 어디에도 거룩하고 존엄한 인간의 가치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위버멘쉬를 지향하는 호모 클리마투스는 자본의 지배에 저항하고 인류 전체를 횡단하는 공적 가치, 존엄과 헌신의 가치를 창조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50년 전 ‘성장의 한계:돈은 죽었다’는 로마 보고서의 정신을 새겨야 한다.
결국 호모 클리마투스는 더 이상 기존 자본 지배를 받아들인 상태로 기후변화에 ‘적응’하며 산다는 소극적 자세를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처지를 넘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야 할 ‘기후인’이기 때문이다. 결국 실천하는 포스트 휴먼으로서 호모 클리마투스의 생존은 위기의 발화점인 온실가스를 자발적으로 감축하는 삶의 패러다임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