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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의 골은 너와 내가 메워야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6월 17일(화) 15:53 가+가-
‘서로 같이’ 산다고 말하면서도, 서로를 깊이 불신하는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이름 아래, 이웃은 어느 순간 ‘함께 사는 사람’이 아닌 ‘내가 경계해야 할 사람’이 되어버렸다. 대화는 종종 응어리로 번지고, 정치적 견해의 차이는 인격의 평가로 이어진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상대를 이해하려 하기보다 단죄하려 들었는가.
독일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정치는 공동 세계를 함께 가꾸는 일”이라 말했다. 오늘날 정치는 공동의 세계를 나누는 도구처럼 쓰인다. 이념은 삶을 해석하는 렌즈일 뿐인데, 우리는 그 렌즈를 통해 타인의 존재까지 심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특히 배움이 큰 사람이 논리적 골을 크게 벌리는 것은 아닌가? 진보는 약자 보호와 구조 개혁을 이야기한다. 보수는 책임과 자유, 질서와 전통을 중시한다. 이것은 세계를 보는 두 개의 시선이며, 상호 보완적인 사회 지혜가 될 수도 있다. 두 개의 구도는 인류의 질서를 일으키는 방향이다. 어느 순간, 이 시선은 자기 진영 안에서만 ‘정의’가 되었다. 상대는 무조건 ‘불의’가 되었다. 이념이 도덕의 절대 선처럼 기능하게 된 것이다. 플라톤이 ‘국가’에서 경계한 ‘무지한 열정’이 정치에 파고들면, 진리보다 신념이 우선되며, 그것은 곧 공동체의 분열로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이념 분열은 단순히 정치 이슈를 둘러싼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 속 상처의 반복이다. 해방과 분단, 냉전과 독재, 민주화 운동의 흔적들이 뒤엉킨 결과다. 좌우 진영은 각기 다른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고, 그 상처를 각자의 방식으로 재단한다. 문제는 그 기억이 공유되지 않을 때다.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정반대의 서사가 존재하며, 우리는 더는 같은 역사를 살아온 국민이 아니라,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이질적 타자’로 서로를 인식하게 된다.
분열은 정치권과 언론, SNS 알고리즘에 의해 확대되고 구조화된다. 프랑스 사상가 기 소르망은 “정보의 자유가 곧 진실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진실을 말하는 듯하지만, 그 배치는 철저히 편향되어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의 분노를 더 강화하고, 공감 능력을 마비시킨다. 우리가 어느새 그 안에서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분열을 메울 수 있을까.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인간은 ‘나-너’의 관계 안에서만 진정한 존재가 된다”고 말한다. 상대를 ‘그것’이 아닌 ‘너’로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인간다운 관계를 맺게 된다. 이념도 다르지 않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틀린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의 출발점이다. 중간지대의 회복 또한 중요하다. ‘중도’는 이도 저도 아닌 기회주의가 아니라, 양극을 조율하는 중심의 지혜다.
“모든 위대한 사회는 중심을 통해 유지된다”라는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말처럼, 우리는 다시금 이성적 중도를 복원해야 한다. 언론은 갈등을 조장하기보다 설명하고, 정치인은 상대를 설득이 아닌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육은 이념을 강요하기보다, 다양한 시각을 존중하고 공존의 힘을 키우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자. 우리는 서로 달랐다. 그러나 달랐기에, 함께할 수 있었다. 그것이 공동체의 본질이며, 민주주의의 진정한 정신이다. 루마니아 출신 철학자 에밀 시오랑은 “극단은 언제나 반대 극단과 닮아있다”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가 극단으로 치달을수록, 양쪽 진영은 서로를 비난하면서도 서로를 닮아가는 아이러니를 반복한다.그 고리를 끊어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서로를 이해하려는 대화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것은 거창한 합의가 아니라, 작고도 일상적인 존중에서 시작된다. 내가 먼저 말을 걸고, 먼저 들으며, 먼저 다리를 놓을 때, 이념의 깊은 골은 조금씩 메워질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이념이 아니다. 지혜로운 상상력과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용기다. 그것이야말로, 분열을 넘어 우리가 다시 하나가 되는 길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분열의 시작은 정치였다. 표를 위하여 지역으로 갈라놓았다. 한술 더 떠서 좌와 우로 갈라놓았다. 광주와 대구의 생각은 표로 보면 알게 된다. 개표를 보면서 대구는 광주를 탓한다. 광주는 대구를 탓한다. 누구의 잘못을 가리기는 너무 멀리 왔다. 개개인이 화합에 줄을 밀고 당겨야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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