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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마을이 답이다
김양용 철학박사
작성 : 2025년 06월 15일(일) 15:14 가+가-
지난 2005년 독일을 방문한 고노무현 대통령의 관심은 생태공동체에 집중되었다. 그는 ‘우리는 왜 이렇게 못하는가?’를 물었다. 퇴임 후 그는 단순한 친환경 농부가 아니라 생태주의 공동체 모델을 꿈꾸었다. 오리농법, 물레방아 초소수력, 태양과 풍력을 통한 에너지 자립, 그리고 생태적 영성을 간직한 마을 공동체가 그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인간이 사회적 동물임(poliktik zoon)을 강조한 것은 가정이나 ‘마을’과 같은 공동체적 삶을 지향하는 인간의 본성을 표현한 말이다. 인간에게 “생활과 운명을 함께 하는 조직체”인 공동체는 자아실현의 장이다. 가정이 혈연공동체라면 마을은 지역공동체이다. 그러나 산업화의 이기적 욕망과 근대성이 빚어낸 지역공동체의 파괴는 급기야 자연과 인간의 공멸을 노정하고 있다.
20C 후반 ‘생태마을’이 주목받은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고대로부터 유토피아를 꿈꿔온 현자들의 공통 지향점이 마을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춘추전국시대 노자가 부국강병의 패권주의로 인해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던진 ‘무엇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에 대한 답으로 소국과민의 촌락공동체를 제시하였다. 이는 간디가 ‘인도는 마을(Swaraj)이다’, ‘마을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며 자치 기반의 마을공동체를 강조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렇다면 노자나 간디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대안적 생태마을, 생태마을의 핵심 전략과 우리나라의 현주소를 살핌으로써 그 해답을 모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을 공동체란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및 환경적으로 지속 가능한 길을 목표로 하는 전통적이거나 의도적인 공동체다. 그런데 마을공동체가 특별히 강조되는 이유는 근대성으로 인해 파괴된 생태공동체에 대한 복원이자 대안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간의 이기적 욕망을 내세운 근대의 기술과 자본의 결합이 예외없이 우리 사회를 도시중심으로 재편하였고, 전통적인 마을공동체를 무너뜨렸다. 사실 근대화 이전의 전통 마을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 자기희생적 협동과 결속을 중시하는 생태공동체의 원형이었다. 우리의 마을공동체가 자본과 기술의 지배하에서 자발적 헌신과 협동보다 이기적 욕망이 중시되면서 필연적으로 지역공동체는 파편화되었다. 다행히 호모사피엔스는 자연개조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고, 자신의 생존이 필연적으로 자연의 용량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점에서 간디는 “마을이 세계를 구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1992년 리우환경회의에서 대두된 생태도시의 미시적 단위에 ‘마을’이 자리하고 있지 않는가?
1990년대 후반부터 전개된 우리나라 생태마을은 전통적 부락을 생태마을로 전환하는 전략과 텅빈 곳에 계획 공동체를 만드는 전략으로 구분된다.
기존마을의 전환 전략은 다시 정부 주도와 민간 주도로 나뉜다. 정부 주도의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차원에서 소득증대를 위한 농촌 종합개발사업이나 생태관광마을 지정 지원 등 자본 중심의 전략이다. 이때 ‘생태’는 소득이나 관광의 자원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농식품부 및 산림청의 산촌생태마을, 환경부의 생태마을, 해수부의 어촌 휴양마을 등 관주도형 생태마을이 총 500여개소에 이르지만, 알량한 시범마을 어디에도 3만여개 마을을 아우르는 ‘인간과 자연의 협력’, ‘분권화된 구조와 광범위한 자급자족’ 등 총체적인 생태학적 접근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들의 관심은 낙후된 벽지의 개발에 집중한 나머지 ‘생태’를 겨우 인간의 욕망 충족을 위한 소득증대나 빼어난 경관의 관광자원화 정도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보수정권의 반생명적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농촌 붕괴 속에 생태마을의 진전이 멈추었다.
이에 비해 민간 주도의 기존마을 전환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라는 생태가치를 지향한다. 특히 민간주도 전략은 기존공동체의 하드웨어(빈집 등)의 활용과 고령사회로 인한 짧은 세대교체, 정부의 참여로 자금 지원이 용이하다는 장점 때문에 생태마을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반면에 사업과 생활, 생태가 온전한 균형을 이루거나 원주민들의 인정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에 비해 계획 공동체로서 생태마을은 참여자가 원하는 시설이 단기간 실현되고, 대안 프로젝트(학교, 연구소, 공연장 등)나 공동체 영성개발 등이 용이하다. 세계 최초의 계획형 생태마을(1987년~)인 호주 <크리스탈 워터스> 마을을 모델로 삼은 이들은 전세계 1만여개 생태마을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만큼 생태사회를 향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사는 공동체” 즉 자족적 생태공동체(permaculture)를 꿈꾸며, 1996년 유엔의 세계거주지상까지 수상하면서 제도권에서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토지의 구입이나 초기 경제적 어려움이나 갈등 해결이 약점으로 지적된다.
황대권의 말대로 기후 위기가 점증 될수록 이에 대응한 사이버 공동체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또한 생태사회에 각성한 생태공동체의 숫자도 증가추세다. 그럼에도 국가는 자본과 시장의 지배아래 여전히 경제위기를 외치며 발버둥 치고 있다. 다행히 민간주도의 전략은 귀농학교와 생협, 다양한 공동체의 묵묵한 생태 지향의 노력이 여러 부침 속에서도 성과를 보이고 있다. 정부가 자본과 시장에 자유롭지 못할 때는 주민과 민간이 나서야 한다. 그동안 민관협치의 실패 요인인 공직자의 생태 영성의 결핍이나 오로지 성과에 매몰된 관료주의를 일소하고 민간주도형 거버넌스로 거듭나야 한다. 이 점에서 이재명 정부의 생태사회에 대한 기대를 접을 수 없다. 그것이 기후위기의 답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꿈이었던 ‘사람사는 세상’을 우리 모두 함께 꾸면 필연적으로 현실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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