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운 두부 말들이 통한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6월 03일(화) 16:26 가+가-

“찌질하다, 찌질해” 조금은 속된 표현이다. 요즘 시대의 이질 군상을 이보다 더 정확히 포착하는 말이 있을까. 찌질함은 단순한 유치함이나 허세가 아니다. 그것은 책임을 회피하고, 타인을 끌어내려 자신을 높이며, 비겁함을 논리로 포장하는 태도의 집합이다. 타인을 비판할 자격도 없는 찌질자가 비판을 서슴없이 하는 이질적 태도다.
찌질한 사람들은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조직에선 책임은 회피하고 성과만 챙기는 리더가 있고, 정치에선 분열을 조장하며 지지를 구걸하는 지도자가 있다. 언론에선 진실보다 ‘자극적인 선동’에 목마른 목소리들이 넘쳐난다. 그들은 공통으로 말은 번듯하되, 실천은 느리거나 없는 경우가 많다. 정의를 말하면서도 불의 앞에선 침묵하고, 약자에게는 엄격하면서 강자에게는 유연하다. 거짓말을 너무나 태연하게 한다.
문제는 이러한 찌질함이 이제 개인의 성향을 넘어, 하나의 사회적 패턴(보편의 인식)이 되어가고 있다는 데 심각이 자리한다. 성실함보다는 선동자가, 실력보다는 네모진 구호가, 책임보다는 회피가 생존 방식으로 통하는 구조 속에서 찌질함은 오히려 능력처럼 포장된다. 그 하나의 사례가 미국의 트럼프다. 정치는 그 대표적인 무대다. 거짓말이 전략이 되고, 모순이 기술이 되며, 민망함이 사라진 시대. 그 속에서 우리는 찌질한 권력의 연출을 지켜본다. 상대의 자자란 모순이 보이면 여지없이 공격을 한다. 자신의 커다란 모순을 감추려는 프레임 씌우기도 있다. 프레임 씌우기 학설은 2004년 ‘레이코프(Lakoff)’ 교수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로 정치적 파문을 일으킨다. 보수진영의 세금 완화에 대한 프레임을 사용하여 주도권을 잡지만 진보진영은 논리에 갇혀 실패한 분석을 내놓은 것이 프레임의 시작이다. 한국에서도 최인철 교수가 2021년 프레임 저서를 펴내며 프레임 인용은 대중화되었다. 프레임은 학문적 의미로 출발하지만 정작 나쁜 정치인의 교활한 프레임으로 사용되곤 한다.
찌질한 리더가 살아남는 이유는 단순하다. 유권자 다수의 욕망과 불안을 정교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문제를 해결하겠다기보다 적을 만들어 분노를 위탁받는 방식 “당신이 힘든 건 저 사람들 때문이다”라는 도식은 쉬우면서도 위험하다. 그렇게 찌질함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집단의 감정이 되고, 그 감정은 결국 판단을 흐리고 구조를 타락시킨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는 찌질한 사람들에게 끌리는가. 왜 그들에게 자리를 내어주는가. 그리고, 우리 자신은 과연 그들과 얼마나 다른가. 찌질함은 우리 안에도 있다. 내 책임을 회피하고 싶은 마음, 타인을 탓하고 싶은 유혹, 남의 성공이 불편한 감정. 그것들이 축적되어 어느 날 침묵과 방조로 바뀔 때, 우리는 찌질한 구조 일부가 된다. 이 시대의 가장 조용한 전염병은 바로 이 찌질함일지 모른다. 책임을 회피하고, 거짓에 익숙해지고, 무력함을 정당화하는 삶. 그것이 아무렇지 않게 반복될 때, 사회는 조금씩 병든다. 찌질한 사람들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 자신부터 그 찌질함으로부터 자유로운지 물어야 한다. 거울을 피하지 않고, 책임을 되새기며, 타인의 삶에 무례하지 않은 일상. 그것이 찌질한 시대에 저항하는 가장 단단한 방식일 것이다.
1970년대 군사정권하에 저항 시인으로 알려진 김수영이 있다. 시인은 고궁을 나오면서 시인의 찌질함에 반성하는 시를 만든다. ‘풀은 바람이 오기 전 먼저 눕는다’라는 시인의 고백은 찌질함의 반성이다. 과거나 지금이나, 여전히 자신을 믿는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과 무척이나 어려워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이 인간 군상이다. 극도로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다가올 미래를 노려보다가도, 나의 찌질함에 무척이나 어려워하는 사람이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대선이면 어지간한 프레임이나 찌질의 표현은 대충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국민은 과격함이나 프레임 씌우기는 넌더리가 났다. 말은 칼보다 날카롭다는 격언도 알고 있다. 진심이 아닌 공격의 연설자가 누구인가도 간파한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거짓의 표현에 국민은 속지 않는 법도 알고 있다. 두부는 부드러우면서 영양가가 있다. 말도 두부 같은 부드러움이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