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의 시집 상상력에게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5월 28일(수) 12:59 가+가-

에밀리 브론테는 한 권의 소설로 삭막한 현실을 희망으로 품었다. ‘폭풍의 언덕’은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의 영혼에 오래도록 남은 채, 광기와 사랑,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심연처럼 비추어왔다. 시집 에밀리 브론테의 ‘상상력에게’는 고요한 내면, 글 너머에서 출렁이는 침묵의 바다를 건너는 데 길잡이가 된다. 시집은 단지 언어의 조합이 아니다. 브론테가 침묵 속에서 품은 환상과 상처, 존재와 영혼의 고백이다. 에밀리는 시의 언어로 영혼을 지켰다. 세상 앞에 당당했다. 브론테가 세 자매와 남성 가명으로 시집을 냈다(1846년). 단 두 권이 팔리는 데 그쳤다. 코로나 19가 한창인 2020년 민음사에서 ‘상상력에게’ 시집을 펴냈다. 시도반은 출간 동시에 시집을 구하였다. 20년 전 브론테의 하워스 집을 방문한 느낌까지를 읽었다.
시집의 한글 번역자의 사유와 함께 묶여 있다. 단순히 번역이 아니라, 브론테의 언어를 통과하여 우리 감각으로 다가오는 시적 현현이다. 시는 극단적으로 절제된 문장 안에 세계의 풍랑을 담아내고 있다. 어떤 시는 한 문장으로도 세계를 무너뜨릴 만큼의 서늘한 고요를 머금고 있으며, 또 어떤 시는 존재의 목적을 묻는 맹렬한 돌풍처럼 다가온다.
브론테의 시에는 자주 ‘고독’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고독은 단지 인간관계의 결핍이 아니다. 존재의 뿌리에서부터 솟구치는 자아의 외침이다. 인간이란 결국 혼자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 혼자인 채로도 우주의 섭리를 감각하고자 하는 존재라는 진실을, 그녀는 시로써 써 내려간다.
대표적인 시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에서 그녀는 이렇게 쓴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아, 나는 죽는 것도, 사는 것도 두렵지 않아”
삶과 죽음 앞에서 느끼는 담담함, 아니 초탈은 브론테의 시 세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다. 그것은 현실의 회피가 아니라, 현실을 넘어서는 시적 통찰의 결과다. 그녀의 내면에는 세상의 위선, 종교의 외피, 도덕의 위장으로부터 벗어난 순전한 영혼이 자리한다. ‘브론테의 상상력’이라는 제목은 문학적 기교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영혼의 원형이 지닌 불가해한 힘,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과 경외, 직면을 의미한다.
그녀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자연, 특히 ‘바람’과 ‘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감정의 동요, 혹은 절대자의 기척이다. 그녀는 탄광촌 시골 목사의 딸로서 요크셔의 황야를 걸었고, 그 황야의 바람은 그녀의 사유를 끊임없이 휘감았다. “바람은 내게 말하네, 집으로 돌아오라고” 하는 구절 속에는 물리적 고향이 아니라 영혼의 거처를 향한 갈망이 담겨 있다.
시집을 읽으며 단 한 번도 그녀가 19세기 사람이라는 사실을 떠올리지 않았다. 시대는 사라졌다. 언어의 층위가 변했어도 브론테의 시는 여전히 나를 흔든다. 그녀의 고독은 학인의 고독을 부르며, 그녀의 죽음 충동은 삶의 애착을 되묻는다. 죽음이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심연을 드러내는 수단일 수 있다는, 섬뜩하고도 명료한 통찰을 마주한다.
현대 시는 자주 언어의 기술에 갇힌다. 그러나 브론테의 시는 오히려 기술 이전의 시다. 그것은 생생한 느낌, 철저한 정직함, 그리고 감히 누구도 꾸며낼 수 없는 ‘실존의 적막’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결코 타인을 향한 언어를 구사하지 않는다. 그녀의 시는 언제나 자기 자신을 향해, 혹은 신을 향해 열려 있다. 그 사적인 기도문이 어느새 내 것이 되는 경험. 이것이야말로 시의 본질 아닌가.
‘에밀리 브론테의 상상력에게’라는 단지 그녀의 시를 엮은 묶음이 아니라, 한 편의 ‘영혼의 자서전’이다. 우리는 그 책장을 넘기며 수백 년을 거슬러 그녀의 숨결을 듣는다. 그 숨결은 바람을 닮았고, 어둠 속 한 줄기 빛을 닮았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우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고, 조용히 무언가를 흔든다.
이 시집을 덮으며 오히려 시집을 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에밀리 브론테는 우리 시대에 와서도 다시 살아난다. 그녀의 상상력은 죽지 않는다. 우리 모두 안에 있는 어떤 순결한 고독, 타협하지 않는 정신, 그리고 말로 할 수 없는 사랑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이렇게 고백한다/나는 이제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나는 죽음조차 시처럼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