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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은 정답이 아닌 감응의 여정이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5월 13일(화) 16:05 가+가-
죽음과 늙음은 태양과 같다.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는 뜻도 된다. 인문학은 이 두 가지를 조금이라도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기도 한다.
피에르 쌍소의 『산다는 것의 의미』는 이 단순하지만, 근원적인 물음을 조용히, 그러나 깊이 있게 우리에게 되묻는다. 마치 어느 겨울 아침 안개 낀 창가에 홀로 앉아 차를 마시듯, 그는 삶의 구체적인 단면들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다가간다.
쌍소는 철학자이자 관찰자다. 몽펠리에의 폴 발레리 대학에서 명강의를 한 교수다. 그는 이론보다 경험의 순간을, 선언보다 침묵의 여운을 더 귀하게 여긴다. 그의 시선은 어느 거리를 걷는 노인의 손끝, 약속 없이 만나는 친구와의 대화, 혹은 버스 창밖 풍경에 머문다. 삶은 거창하지 않다.
쌍소는 말한다. “산다는 것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들 속에서도 계속되는 어떤 감정이다.”
세계의 모든 이는 정치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방향을 잃은 시대를 살고 있다. 거대 담론은 사람들을 선동할 뿐, 구체적인 인간의 얼굴을 잊는다.
좌와 우, 보수와 진보를 넘나드는 논쟁 속에서 정작 인간 그 자체는 지워진다. 마치 삶의 의미가 정치적 구호 속에 갇혀버린 듯하다. 그러나 쌍소는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무엇을 성취하거나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느끼고 응답하는 것이다.”
삶의 ‘느낌’과 ‘감응’에 주목한다.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을 걸 때, 그것은 단순한 소통이 아니라 존재가 서로를 ‘인정하는’ 순간이라는 것이다.
죽음도 마찬가지다. 쌍소는 죽음을 삶의 반대가 아니라, ‘감응이 끝나는 지점’이라 말한다. 존재로서 서로를 확인하는 과정이 멈출 때, 우리는 죽음에 이른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제도나 권력 이전에, 인간 존재의 감응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지금의 정치는 너무 시끄럽다. 너무 빠르다. 쌍소가 경계했던 ‘속도의 유혹’은 우리가 삶의 섬세한 결들을 놓치게 만든다. 분노와 불신이 정치의 주된 언어가 된 지금, 우리는 ‘살아있는 정치’가 아니라 ‘죽은 구호’ 속에 갇혀버린 것은 아닌가?
『산다는 것의 의미』는 우리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한 인간이 타인의 슬픔에 귀를 기울일 때, 그것이 바로 인간다움이다.” 그렇다면 오늘의 시대 정서가, 오늘의 사회가 진정 살아있으려면 무엇보다 ‘경청’과 ‘느낌’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는 다시 인간의 표정에 주목해야 하며, 다시 일상의 느린 호흡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삶은 논리가 아니라 풍경이며, 목표가 아니라 길이다. 쌍소는 우리에게 ‘길을 묻는 철학’이 아닌, ‘길 위에서 함께 걷는 감성’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결국 우리가 “왜 사는가”라는 질문보다, “어떻게 살아있는가”라는 물음에 다가서게 만든다.
정치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정치의 이유가 되어야 한다. 쌍소의 시선으로 본다면, 지금의 정치가 잃어버린 것은 방향이 아니라 인간 그 자체다. 이제 우리는 그 인간을, 그 감응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삶이란 결국, 죽음을 향해 가는 여정이다. 그 여정은 결코 비극적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 끝을 마주하는 겸허한 사유 속에서, 우리는 더욱 온전한 삶의 빛을 찾을 수 있다. 오늘 우리가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넨다면, 그것이 바로 죽음을 이기는 감응일 것이다.
삶의 의미는 완성이나 성공이 아닌, 감응의 깊이에 있다. 그리고 그 감응은, 죽음을 깊이 성찰할 때 더 뚜렷해진다. 피에르 쌍소는 말없이 우리에게 속삭인다. “죽음을 생각하라. 그래야 비로소 삶이 보인다.”
바로 그것이 쌍소가 말한, ‘산다는 것’의 진짜 의미 아닐까. “인간이란 언젠가는 더는 이 땅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불행하게도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람끼리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파트리크 모디아노는 말을 되새겨본다.
이제부터 학인은 의미 없이 번쩍거리기만 하는 싸구려 삶을 거부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에 돌아올 시간이다. 생각에 깊어지고 명상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산다는 것의 의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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