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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셀 프루스트와 두통의 문학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4월 22일(화) 15:43 가+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단 한 권의 책으로 문학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무려 수천 쪽에 달하는 이 거대한 정신의 미로는 평생을 병약하게 살아간 한 작가의 방에서 탄생했다.
그 방은 침묵으로 가득했고, 두통과 천식, 신경쇠약이 교차하며 글쓰기를 견디는 고통의 현장이었다. 세상에는 두 가지 두통이 있다. 약을 먹으면 사라지는 두통과 약을 먹어도 사라지지 두통이다. 그래서 두통 전문 의사도 많다. 두통의 종류는 30만 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다소는 과장이겠지만 그렇게 두통은 다양하게 온다는 뜻이다. 두통으로 고생한 위인도 많다. 테레사 수녀는 평생을 두통으로 살다 떠난 분이다. 테레사 수녀는 두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기도를 했다. 이 두통으로 많은 사람의 아픔을 알게 하여주심에 감사를 드렸다는 기도다. 천사와 같은 테레사 수녀님만의 기도로 보인다.
이 글은 출중한 작가가 겪은 신체적 고통, 특히 편두통이라는 육체적 고통이 어떻게 위대한 문학으로 승화되었는지를 따라간다.
프루스트의 방은 마치 무덤 같았다. 햇빛 한 줄기도 허락하지 않은 두꺼운 커튼, 외부 소음을 막기 위해 벽에 바른 코르크, 습기와 먼지에 민감한 폐를 지키기 위한 철저한 격리. 그곳은 고요했지만, 그의 두개골 안에서는 천둥 같은 고통이 요동쳤다. 그는 종종 “칼로 머리를 가르는 듯한 통증”을 호소했다. 때로는 온종일 눈을 뜨지 못한 채 침대 위에서 괴로워했고, 며칠간 글을 쓸 수 없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방, 바로 그 고통 속에서 인류의 기억과 감각에 대한 가장 정교한 문학이 만들어졌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라는 단지 한 인간의 회고록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시간이라는 실체 없는 흐름을 인간이 어떻게 체험하는지를 섬세하게 풀어낸 정신의 지도다.
이 대작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바로 ‘마들렌’이다. 홍차에 적신 과자를 한 입 베어 물자, 어린 시절의 기억이 돌연 되살아나는 장면. 이 장면은 프루스트의 문학이 단지 ‘회상’의 서사가 아니라 ‘감각을 통한 회복’이라는 것을 명징하게 드러낸다.
그는 고통받는 신체를 단지 참아낸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세계를 인식했다. 두통은 시간을 뒤틀고, 감각을 날카롭게 만들며, 외부 세계로부터 단절된 내면의 소리를 더욱 또렷하게 들리게 했다. 프루스트의 장광설 적 문장은 이러한 내면의 흐름을 그대로 따라간다. 하나의 문장 안에 수십 개의 단서와 여운, 반복과 변주가 담겨 있는 이유다. 그것은 병상의 언어이자, 고통의 파편을 하나씩 꿰어 만든 정교한 레이스이다.
사람들은 흔히 병든 작가를 낭만화한다. 고통이 창작의 근원이 된다고 쉽게 말한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그 통념을 거부하면서도, 자신의 병을 창작의 조건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병을 축복이라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병으로 인해 잃어버린 것들, 여행, 사람, 일상을 애도하면서도, 그 결핍 속에서 찾아낸 문학적 넘침을 놓지 않았다.
그가 어느 편지에서 쓴 말은 우리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내 병은 나를 침대로 밀어 넣었다. 그러나 그 침대 위에서 나는 모든 장소를 여행할 수 있었다” 이것은 문학이 공간과 시간을 초월하는 정신의 통로임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프루스트의 두통은 그에게서 많은 것을 빼앗았지만, 동시에 문학을 위한 고통의 언어를 주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그 언어의 은총을 누리고 있다.
고통은 침묵하고 싶게 만든다. 그러나 어떤 이는 그 침묵 속에서 문장을 새긴다. 마르셀 프루스트는 그런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의 방은 어두웠지만, 그의 문장은 세계를 밝히는 기억의 등불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 빛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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