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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에 피어난 운명적 승부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4월 15일(화) 15:46 가+가-
신선(神仙)의 오락이 바둑이다. 바둑은 고요한 전쟁이다. 손끝에서 출발한 한 수가 인생 전체를 뒤흔드는 세계. 바둑은 손끝으로 연주하는 피아노의 검은, 하얀 음반과 닮았다. 수녀님이 검은 옷에 하얀 카라의 디자인은 바둑과 닮았다. 여고생의 교복이 검은색에 하얀 카라도 바둑에서 나온 디자인이라는 설도 있다.
바둑의 기원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기원진 2000년~3000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춘추전국 시대에 귀족들의 지적 오락으로 인식됐다. <묵자>, <논형>(중국 후한 시대 철학자 왕충의 저서) 등 고문서도 등장한다.
바둑은 전쟁지략, 인생 도리, 우주의 이치를 담은 상징의 놀이로 간주하였고, 유교·도교적 사유와도 깊이 연결됐다. 한국에는 삼국시대 중국을 통해 전래 됐다. 고구려 벽화나 신라유물에 바둑 관련 장면이나 기물에 나온다. 일본에도 7세기경 전해졌다.
한국은 독자적인 발전으로 서민과 양반 모두 즐기던 문화로 자리 잡았다. 20세기에 들어서 한국의 바둑은 세계 중심으로 우뚝 자리 잡았다. 마치 K팝과 같이 부상하였다. 심지어 인공지능(AI) 등장으로 2016년 알파고가 인간 최강자 이세돌을 이기면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 2025년에는 세계 최초 바둑영화를 만들어 한국의 새로운 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영화 <승부>는 이 정적인 세계 속에서 피어난 스승과 제자의 팽팽한 긴장과 그 안에 숨겨진 인간적인 갈등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두 전설적인 바둑기사, 조훈현과 이창호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들은 한국 바둑 사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긴 인물들이다. 스승 조훈현은 절대적인 강자였고, 제자 이창호는 그를 뛰어넘은 천재였다. 영화는 이 두 인물의 관계를 단순한 대결 구도가 아니라, ‘운명을 공유한 두 인간의 고독한 여정’으로 풀어낸다.
조훈현 역을 맡은 이병헌은 내면의 복잡한 감정을 절제된 연기로 보여준다. 제자의 성장을 바라보는 스승의 자부심 뒤에는 서서히 밀려드는 불안과 고독이 숨어 있다. 그의 눈빛 하나, 담배를 문 손끝의 떨림 하나에 조훈현이라는 인물의 인간적인 고뇌가 담긴다. 유아인은 말수 적고 무표정한 이창호의 캐릭터를 ‘비움의 연기’로 소화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되, 감정을 견디는 법을 통해 관객에게 오히려 더 강한 여운을 남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996년 세계대회에서 이창호가 조훈현을 꺾는 장면이다. 영화는 단지 승패의 긴장만을 묘사하지 않는다. 그 수를 두는 두 인물의 숨결, 무너지는 자존심과 피어나는 두려움, 무엇보다도 서로를 바라보는 복잡한 감정의 층위가 정교하게 그려진다.
연출 또한 뛰어나다. 바둑이라는 소재는 자칫하면 시각적으로 지루할 수 있지만, 감독은 조명과 카메라, 편집을 통해 한 수 한 수의 전투를 실감 나게 구현했다. 침묵이 흐르는 장면에서도 관객은 마치 전쟁터에 있는 듯한 몰입을 경험하게 된다.
음악은 조용히 배경을 깔면서도, 때로는 감정의 분기점을 강조하는 도구로 쓰인다. 스승과 제자 사이에 흐르는 감정은 말보다 침묵으로, 고요한 음악과 함께 더 깊이 다가온다.
이 영화는 단순한 전기 영화나 스포츠 영화가 아니다. 인간관계의 본질, 제자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스승의 마음, 그리고 스승을 넘어설 수밖에 없는 제자의 슬픔까지 삶의 비극과 미덕이 함께 공존하는 인간 드라마다.
결국 <승부>는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수를 두고 있는가?” 우리는 모두 인생이라는 바둑판 위에 앉아 있다. 누군가의 스승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기든 지든,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가이다.
영화 <승부>는 답한다. 바둑이라는 승부 속에서 아주 조용히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속삭인다. 영화 <승부>는 신이 만든 오락도 한국만의 철학적 의미, 전략성, 그리고 한·중·일 각국의 문화 차이를 한국인의 중심으로 깊이를 바꾸어버렸다.
‘흑은 검은 밤 같고/ 백은 하얀 숨 같다// 한 수 두면/ 세상이 달라지고/ 지우지 못할 인생이 놓인다// 이기려던 마음은/ 져도 좋다는 마음에 져주고 / 져도 좋던 마음은/ 이기려는 집념으로 살아난다// 스물아홉 줄/ 작은 우주 안에 / 내가 있다/네가 있다/그리고 우리 인생이 놓여 있다’ 최창일 시 <흑과 백>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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