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기사 ▽
환경윤리의 선구자, 알도 레오폴드를 만나다
김양용 철학박사
작성 : 2025년 02월 16일(일) 15:39 가+가-
세계 10위의 경제 대국 대한민국이 망상적 친위 쿠데타로 내란을 지속하고 있을 때 세계는 기후붕괴라는 문명사적 과제에 몰두하고 있었다. 토니오 구테흐스 UN 사무총장은 “세계는 2024년이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되면서 ‘10년의 치명적 더위’를 겪어왔다”며 “지금 지구촌은 기후위기(Climate Crisis)를 지나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로 치닫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기후 시스템 붕괴나 생태 위기에 대한 설득력 있는 원인은 무엇이며, 인류는 그에 대한 윤리적 대안을 가졌는가?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지배원리를 기술적 개발 원리와 효율성의 원리에서 찾았다. 이는 20세기 이후 인류가 꿈꿔온 과학기술에 의한 유토피아라는 기술지향주의(technocentrism)의 핵심 원리이다. 이로부터 인류는 주식시장에서 최고의 인기 종목인 AI 관련주에 주목하며 무한 성장을 꿈꾼다. 그러나 1972년 인류의 보편적 과제를 제시해 오던 로마클럽 보고서 ‘성장의 한계’에서 환경 오염과 식량 부족, 생태계 파괴로 인하여 100년 이내에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 경고했다. 앞으로 47년 이내의 일이다. 더구나 스티븐 호킹 등은 경제의 문제를 넘어서 인류의 종말까지 경고해왔다.
오늘날 기후나 환경 문제가 궁극적으로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윤리와 철학의 문제로 귀결된다. 관련하여 생태학자들은 생태위기의 원인이 인간중심의 잘못된 자연관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인간이 자연에 대하여 정복자(conqueror)로 나설 것인가, 자연의 일원으로서 공생자(symbiont)로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전자가 인간중심이라면 후자는 생태지향이다. 그렇다면 양자의 자연관과 윤리적 논거는 무엇인가? ‘캉커러’로서 자연관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주류를 형성하고 있으며, 주로 경제학적이고 과학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심비언트’로서 인간은 생태계 내에서 자신의 생존방식으로 ‘공생’(symbiosis)을 주장하는 생태지향주의라는 대안적 윤리를 제시한다.
경제학적 자연관은 자유시장경제의 아버지인 아담 스미스(Adam Smith)가 잘 대변해준다. 그에게 인간의 소유욕은 황량한 자연 속에서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스미스의 ‘무한한 번영’이라는 낙관적 전제는 오히려 오염과 파괴라는 결함과 비극이라는 문명사적 오류를 낳았다.(허버트 그룰) 이것은 경제적 자연관의 딜레마로서 주식시장에 몰리는 현대인에게 요구되는 윤리적 결단의 핵심 쟁점이다.
과학적 자연관은 16~17세기 유럽의 과학혁명이 촉발한 기술지향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소위 과학혁명은 환경의 적절한 조절과 개조를 통하여 경제적 번영과 풍요를 이룰 뿐만 아니라 심지어 생태학적 위기마저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과학만능주의로 이어진다.
실제로 기술 만능주의자 터커(W.Tucker)는 종말적 위기를 ‘단지 시정되어야 할 몇몇 잘못일 뿐, 근본적으로 경제적 문제에 지나지 않으며, (과학기술로) 반드시 해결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 점에서 과학기술지향주의는 무한 번영을 추구하는 경제적 자연관과 다르지 않다. 아무래도 그들은 지구의 자원 및 자정능력, 경제 등의 한계를 불합리하고 무책임하게 외면하고 있다.
생태지향주의는 자연과 인간의 동등성을 주장한다. 이는 20세기 가장 영향력있는 보전 사상가이자 환경윤리의 선구자인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의 ‘땅의 윤리’에 가장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모래 군의 열두 달’에서 인간의 토지 남용이 정복자로서 ‘경제적 접근’ 때문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토지를 다른 동식물, 토양, 물 등과 함께 살아가는 ‘생명 공동체’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인간은 장구한 진화의 과정에서 함께해온 다른 동료 생물들과 동등한 그 공동체의 구성원임을 자각해야 한다.
이상에서와 같이 기후 시스템 붕괴 등 생태계 위기에 대한 유력한 원인으로 경제학적이고 과학적인 자연관이 자리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는다. 기후와 생태위기에 속수무책인 근대적 세계관에 대한 반성이야 말로 당면한 위기 극복을 위한 지혜로운 대안의 계기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기후붕괴에 대한 인류의 지혜로운 대안으로서 윤리적 결단을 내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당장 위기 극복을 위한 대응책으로 과학기술만큼 강력한 도구는 없지만, 여전히 지속가능한 방향타는 자연생태계까지 도덕의 주체로 삼는 생태지향주의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좀더 장구한 자연의 진화를 고려한 방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지혜를 알도 레오폴드의 위대한 생태 서사시 ‘모래 군의 열두 달’에서 ‘토지의 윤리’라는 이름으로 건져올릴 수 있었다. 이제 인류는 지구 즉 토지라는 자연생태계를 ‘하나의 생명 공동체’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로소 위기 극복의 키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많이 본 뉴스

종합

뉴스

시군별뉴스

오피니언

기사 목록

대한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