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걷는 문장들
최창일 시인·<시원의 입술>저자
작성 : 2025년 01월 14일(화) 16:27 가+가-

“기쁨이 뭐라고 생각해요?” 막연한 물음으로 보인다. 막연하기보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얼굴을 쳐다본다. 멈칫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들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세금 없이 50억 원의 복권에 당첨이 기쁨”이라 한다. “연인과 결혼”이라 한다. 고개를 끄덕인다. 대답을 못 하는 학생도 있다. 복권도 좋고 연인과의 결혼도 모두가 기쁨이다.
말끔히 쳐다보는 학생이 “바로 나의 기쁨! 이 세상에서 가장 기쁘고 그게 가장 좋은 겁니다”성숙한 말을 한다.
사람이 본디 다른 이들의 ‘기쁨’도 ‘슬픔’도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렵다. 그냥 어디선가 배운 데로 공감하는 것이다. 한강 소설가가 노벨상을 받은 일도 그렇다. 노벨문학상이 생긴 이래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일이 처음이다. 국민, 모두가 하나같이 기뻐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일반인도 아니고 문인들이 기뻐하지 않는 부류들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스스로 소설가라고 하면서 이름도 듣지 못한 작가가 치고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상자의 작은 아버지라는 사람이 의견을 걸면서 노벨 수상에 대한 반감을 표시했다. 그것도 목사라고 한다. 하긴 목사가 이 땅에서 탐탁한 인격자로 대우를 받는 것은 멀어진 세상이다. 특정 목사가 광화문광장에서, “하나님, 까불면 죽어” 욕설하는 것에 시민들은 넌더리가 났다는 현실 때문이다. 문제는 그러한 목사를 두고 목사들이 두드러진 반응이 없다. 종교 혼탁의 단면이다.
기쁨이라는 것이 공통적이거나 상식에서 벗어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기쁨이란 정서는 우리가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는 척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의 세상이라고 믿어 왔다. 세상에서 공감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교과서에서 배웠다. 다른 사람의 슬픔을 보듬는 여력이 사라진 세상이 우리는 다반사로 보고 있다.
사람이 시를 쓰는 이유는 다양하다. 다음과 같은 동기를 들기도 한다.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경험을 표현하는 강력한 수단이다. 기쁨, 슬픔, 사랑,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시로 통해 표현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고 정서적 해소를 경험도 한다. 시를 쓰거나 시를 읽는 것은 자아를 탐구하고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시인들은 시를 통해 자신을 스스로 표현함으로써 그 경험을 이해하고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시와 노래는 같은 영역대로 보는 것이 보편이다. 최근 나훈아 가수가 은퇴공연에서 “왼쪽은 잘했느냐”라고 한마디 한 것이 화근이 되는 것을 본다. 어느 쪽에서는 양비론이라고 비판을 한다. 이러한 것은 그가 가지는 사회적 파급효과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을 한 것이 잘못일까. 우리 사회가 이제는 의견의 대하는 방법이 광범위해졌다는 방증도 된다. 무엇이 그르고 옳다는 것에 쉽사리, 단정하는 사회는 벗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슨 말을 하든, 상식적이고 이성과 합리적일 때 공감을 얻는다. 우리는 광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 국가 공동체라는 상식을 벗어난 시대에 살고 있다.
시는 작가와 독자 사이의 특별한 소통의 방식이다. 시를 쓰는 것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 다름이 독자에게 공감이 가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반감이 되기도 한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장 큰 행복도 슬픔도 결국 오롯이 ‘나’에게서 시작되므로 우리라는 틀에서 빠져나와 나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행복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과 독서에 집착도 한다. 그것이 ‘나’에게 벗어나 ‘나’를 가장 온전히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있을 수 있는 것.
SNS의 보편과 함께 의견의 광장에서 나의 서 있는 위치와 타인이 서 있는 위치의 다툼을 본다. 나와 타자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 공간의 대립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니 하루가 지나서 보면 모두가 나의 서 있음과 상대가 서 있음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는 것들이다. 조금 인격적인 대우를 받으면 그것이 교만이 되고 만다.
가슴이 뛰었다. 집에서 펼치는 책에서 느낄 수 없는 것이 떠나면 비로소 느끼는 것이 여행이다. 떠나 와서 읽거나 생각할 때에 기쁜 것이 거기 있다.
나는 나의 기쁨을 나의 행복을 느끼길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도 너의 행복과 기쁨을 찾길 바랄 뿐이다. 그것은 마음을 걷는 문장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