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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어둠을 넘어 ‘대로’로 나아가는 “원동력”이다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5년 01월 13일(월) 16:26 가+가-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내일 무슨 일이 닥칠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은 좋은 일이 생기리라는 기대와 바람으로 저마다의 마음속에 자리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때론 상반되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확고한 신뢰에서 우려로, 평안에서 불안으로, 확신에서 주저와 의심으로 변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일상에서 흔히 겪곤 한다. 또한 아무것도 행복을 가져다줄 수 없다는 듯 낙심하여 미래를 비관과 냉소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우리는 빈번히 마주친다. 현재 우리 국민이 마주하고 있는 이 거대한 파고가 반성과 회개의 동기가 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세워가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간음하다 잡힌 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질문하는 민중에게 예수께서 땅바닥에 글을 써서 답변하는 명장면을 보여 주는 것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을 해결해 가는 Key Words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기에 담대하게 기고한다. 누가 누구를 돌로 칠 수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 돌로 칠 정도로 허물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설령 그렇게 살아오면서 세인의 존경을 받아온 사람도 정작 법과 규정에 의해 확실한 정죄의 대상으로 앞에 꿇어앉아있는 사람을 돌로 칠 수 있을 정도의 뻔뻔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때로는 살맛이 난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40,000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가 ‘내가 옳다. 너는 그르다’ 하면서 싸우게 되면 시시비비를 가리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결국 어부지리로 제삼자만 득을 보게 되는 엉뚱한 결과만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법치’보다 더 높은 가치는 ‘배려와 양보와 겸손’이며, “법치”를 주장하는 자가 ‘선한 양심’을 가진 자가 아니면 가해자 일수도 있지 않겠는가? 4분 5열 되어가는 국론분열 현상을 외면한 체 자기 유익만을 챙기는 자들에게 지도자라는 “위대한 수식어”를 붙일 수 있단 말인가?
2024년을 마무리하면서 교수들이 뽑은 우리나라의 사회상을 한 마디로 대변할 수 있는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가 선정되었다. 이 단어는 권력이나 세력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이 만연되고 있다는 뜻이다. 설문 결과 2위는 후안무치, 3위는 석서위려로 ‘머리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뜻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의 사자성어만 선정됐다. 2020년의 아시타비(我是他非)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이고, 2021년의 묘서동처(猫鼠同處)는 ‘고양이와 쥐가 함께 동거한다’이며, 2022년의 과이불개(過而不改)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이다. 2023년의 견리망의(見利忘義)는 ‘이로움을 보느라 의로움을 망각한다’이다.
물론, 사자성어를 선정하는 이들이 지식인 계층인 교수들이며, 이들은 사회의 어두운 면을 직시하고 개선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겠지만 우리에게는 “희망”의 사자성어가 더욱더 필요하다. 매년 “희망”을 가지고 한해 첫날부터 출발한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나라의 사람들이 긍정적인 일들을 만들어 낸다는 ‘각오와 결단’이 아니겠는가? 또 국민을 위해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힘을 모아 함께하는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결기”가 아닐까? 이런 나라가 어떻게 잘못될 수 있을 것인가?
한국계 미국인 최초로 미 상원에 입성한 앤디 김(민주·뉴저지) 상원의원이 8일(현지시각) 한국 국내정치 상황과 관련해 “지금은 안정을 위해 정말 중요한 시기이지, 특정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해 노력할 때가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김 의원은 이날 미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한국 취재진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취재진을 대상으로 개최한 기자간담회에서 “무엇보다도 안정화가 우선이다”며 “제가 계속 전달하려는 점도 이 점인데 분명 신속하고 평화롭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곧바로 성명을 내고 “국민 통치라는 근본적 기반을 훼손하고 국민이 안보와 안정을 누려야 할 시기에 한국의 취약성을 극적으로 증가시켰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면서도 우리의 “안정”을 걱정하고 있다.
우리는 오랫동안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가정 안에서조차 가족과 차분히 정담을 나누는 경우가 드물 정도로 조급함이 현실을 지배하는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거대한 장애물도 빨리빨리가 아닌 인내와 기다림이라는 다양한 대화, 숲이라는 전체를 보면서 합리적인 접근이 요구되고 있다.
누구를 편들기 위함이 절대 아니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고 요구되는 우리 사회의 가치 있는 덕목이며, 동시에 2020년에 선정되었던 ‘아시타비(我是他非)’라는 사자성어를 접목시켜 봐야 한다는 논리이다. 결국 ‘서두름’ 아닌 ‘반성함’이 더 절실하다 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희망”을 품고 미래를 바라보면 얽혀있는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는 열쇠가 보인다. “희망”을 지지하는 사회적 약속이 있는 곳에 “생명력이 태동”한다. 이는 또한 세계를 향해 무한하게 뻗어가는 우리 민족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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