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우리 ‘미래의 꿈’은 “나라다운 나라” 세워가는 일!
이창용 논설위원
작성 : 2025년 01월 06일(월) 16:17 가+가-

어제 스크린 골프장에서 4명의 선·후배들과 즐거운 라운딩을 하였다. ‘스크린골프’는 우리 교회 ‘골프 동아리’ 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으니 5개월 정도 된 셈이다. 스크린골프는 4명이 한 공간에서 순서에 따라 18홀을 도는 게임으로 종전에 필드에서만 가능했던 라운딩이 스크린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도 할 수 있도록 첨단기술이 융합되어 탄생된 새로운 개념의 골프장으로서, 평소 가고 싶었던 골프장을 마음대로 골라 라운딩을 할 수 있으며, 비용이 저렴하여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고, 드라이버나 아이언 샷 등의 비거리를 정확하게 측정한 정보를 취득하여 보다 정교한 골프를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가 하면 필드는 각자 자기 볼을 찾아 흩어져서 샷을 해야 하기 때문에 게임규칙을 지키면서 라운딩을 하는지의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스크린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같은 공간에서 야외 필드와 같은 환경 속에서 볼을 치기 때문에 그때마다 굿 샷을 외쳐주면서 박수를 보내는 등 서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최상의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사람냄새가 진동하는 좋은 분위기를 항상 가질 수 있다. ‘우리 정치’도 이렇게 되어야만 싹수 있는 정치를 국민에게 보여줄 수 있다.
대한민국의 정치, 국적불명의 총성 없는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권력투쟁의 나날들 감히 정치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람의 생명은 유한한데 배려하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정치가 그렇게도 어려운가? 어려우면 내려놔야지 ‘나라다운 나라’는 ‘품격을 갖춘 정치’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국격(國格)’을 유지하는 데 있다. 현재 우리의 형편은 주변 국가들에게 신뢰를 상실하고 권력투쟁의 소용돌이 속에 내부혼란이 극에 달할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래를 내다보는 틈도 빼앗긴 체 탄핵이라는 블랙홀에 떠밀려가고 있어 불안하고 불쾌한 감정을 떠안은 체 새해를 열어 감으로써 제2의 외환위기를 겪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언제까지 권력투쟁을 바라만 봐야 하는지 자문자답하면서 자기 유익 챙기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국회의원들을 아예 뽑지 않을 법안이라도 이 기회에 만들면 어떨까? 국회에 맡기지 말고 국민이 직접 만들었으면 하는 간절함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왜 계엄을 선포했을까? 내란죄와 직권남용죄 등으로 국회에서 탄핵의결을 하였다. 국회추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은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대한 과반찬성에 의한 대행탄핵, 2번째 권한대행 부총리의 국회추천 헌법재판관의 3명 중 2명 임명, 공수처의 대통령 체포영장신청과 집행을 위한 경력 동원과 이를 저지하기 위한 경호처의 저지행위, 이런 일련의 사태들로 인한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들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짧은 기간에 일구어 놓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라는 큰 기둥을 경이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세계인들이 머리를 갸우뚱하였다는 외신보도에 우리의 자존감은 큰 내상을 입었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51%의 국민들께서 동의하는 바로잡음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기 마련이다. 이번 계엄도 원인과 결과를 철저하게 규명하여 ‘내란죄’인지, ‘직무유기죄’인지, ‘국정혼란을 막아내기 위한 궁여지책’인지, 공정한 판결을 요구한다.
우리 정치를 골프 룰에 비교해 보자. 골프선수들이 반칙을 하는 경우는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이를 교훈으로 받아들일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반칙행위자는 게임을 몰수하거나 출전을 일정기간 정지시키는 벌칙이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다. 정치인들도 마찬가지 룰이 공정하게 적용되어 유권자들이 지도자를 선별하는데 정확한 기준으로 활용토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는 첫째로 민주사회에서 예외 없이 모두에게 공정하고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법치주의를 일컫는 말이요, 둘째는 반칙 없는 공정한 정치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사회란 어느 때 가능한가? “법보다 양심을 존중히 여기며 윤리적 가치가 정치적 가치보다 우위”를 차지할 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사람을 멀리할 때 가능해진다. ‘법과 권력이 야합하는 정치를 버리고 정의와 인간애가 공존하는 질서사회’로 탈바꿈해야 한다.
나라다운 나라에서 사는 또 하나의 ‘덕목’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토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성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예수님의 산상수훈에 등장하는 이 구절은 기독교의 황금률로 불린다. 기독교 윤리의 핵심이자 인간관계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의 금과옥조인 셈이다. 이 구절의 핵심은 남이 해주기를 바라는 그것을 내가먼저 실천하라는 것이다. 먼저 대접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심판하지 말아야 한다. 먼저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황금률의 정신이다.
“나라다운 나라, 정치다운 정치는 필드에서 이루어지는 골프게임처럼 모두에게 동일한 규정이 적용되며 배려가 몸에 배어 있는 민주주의,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법치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이 먼저 사랑을 실천하는 이타적인 정치”가 정착될 때 ‘나라다운 나라’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