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사랑
문민용 논설위원
작성 : 2024년 12월 11일(수) 16:40 가+가-

중국 춘추시대에 있었던 일입니다. 노(魯)나라의 한 마을에 가난한 여자가 하나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웃 제(齊)나라에서 노나라를 정복하려고 이 마을에도 쳐들어왔습니다. 그녀는 한 아기를 안고 한 아기는 손목을 잡은 채 이끌고 난리를 피하여 필사적으로 도망쳤습니다. 적은 점점 가까이 쫓아옵니다. 그러나 여자는 두 아이를 데리고 가느라 도저히 빨리 뛸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잡혔구나 싶었을 때, 여자는 부득불 한 아기를 버리기로 작정했습니다. 품에 안고 있던 아기를 얼른 내려놓고, 손목을 잡고 있던 아기만 데리고 뛰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는 차라리 손목 잡고 있던 아기를 버리고 안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가야 빨리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결국은 적의 장군에게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조금 전에 아기를 버리는 그녀를 보았던 장군은 이상하다는 짓이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품에 안고 있던 아기는 내려놓고 손목 잡고 있던 아기를 데리고 도망을 쳤느냐?” 여자는 조용히 설명했습니다.
“내가 품에 안고 가던 아기는 내 아이요, 손목을 잡고 가던 아기는 내 형님의 아이입니다. 난 내 아이를 누구보다도 사랑합니다. 그러나 내 아이를 돌보는 것은 사적인 사랑이고, 형님의 아이를 돌보는 것은 공적인 의입니다. 의를 버리고 사적인 사랑을 택하여 형님의 아이를 버리고 내 자식을 구원한다면 나는 좋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우리 집안 꼴은 어떻게 될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 꼴은 또 무엇이 되겠습니까?”
제나라 장군은 크게 감동하여 “의를 아는 여자가 있는 도성은 쳐들어갈 수 없다. 의가 있는 나라는 공격하지 못하는 법이다”라며 철수했다고 합니다.
1892년 미국의 조지 윌슨이라는 한 남자가 우체국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다 강도와 살인죄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는 재판에서 유죄가 입증되어 결국은 교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자 주위 친구들이 그를 위해 탄원에 나섰고, 다행히 앤드류 잭슨 대통령으로부터 사면장을 얻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사면됐다는 소식을 접한 윌슨은 죽겠다고 고집하면서 사면을 거부했습니다. 그러자 담당 보안관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공식적으로 사면을 받았는데 자기가 원한다고 처형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다시 잭슨 대통령에게 보고했습니다. 당혹스럽기는 대통령도 마찬가지여서 이 사건을 다시 미연방대법원으로 넘겼습니다. 그러자 대법원장 존 마살은 다음과 같이 최종 판결했습니다.
“사면은 한 장의 종이일 뿐이며, 그 종이의 가치는 전적으로 관계된 사람의 수락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사형 선고를 받은 자가 사면을 거절하는 것은 전례가 드물지만, 거절했다면 그것은 결코 사면이 아니다” 그래서 조지 윌슨은 교수대에서 처형되었으며, 그에게 주어진 사면장은 불과 30여 미터 떨어진 보안관의 책상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궁전에 늘 우스꽝스러운 행동과 언어로 사람들을 웃기며 즐겁게 하는 어릿광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리숙한 표정과 행동으로 왕과 시종들에게 웃음을 선사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어릿광대가 공놀이하다 그만 왕이 가장 아끼는 도자기를 깨뜨렸습니다. 너무도 화가 난 왕은 광 대의 경솔한 행동을 용서하지 못하고 홧김에 사형시키라고 명령하고 말았습니다. 조금 후 감정이 진정되고 나니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떨어진 명령을 되돌리는 것은 왕의 권위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사형은 사형이고 다 만 한가지 소원을 들어주어 그를 위로 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광대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나를 즐겁게 해 주었다. 그러므로 너의 마지막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 자, 해가 지금 중천에 있다. 저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생각해서 네가 어떤 방법으로 죽었으면 좋을지 말하라.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리라” 광대는 점점 서산에 기울어지는 해를 초조하게 바라보면서 골몰히 생각하였습니다.
얼마 후 해가 자취를 감추고 그 최후의 빛마저 사라졌습니다. 왕이 물었습니다. “자, 죽을 각오는 되었겠지? 어떻게 죽고 싶은가?” 광대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여유가 있게 대답했습니다. “예, 가장 좋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저는 늙어서 죽는 방법을 택하겠습니다” 왕은 살려고 하는 광대를 살려 주었습니다. 광대는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자기 잘못에 대해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항의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그는 필시 죽임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광대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광대는 자기를 살릴 수 있는 권위는 왕께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 앞에 나가 구한 것입니다. 왕은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