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온화하고 따뜻한 친화적 색깔을 지닌 녹청자가 해남 한 도공예가에 의해 재조명돼 화재가 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녹청자를 재현하는 남강 정기봉씨 해남군 황산면 연호마을 도예가 남강(南崗) 정기봉씨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녹청자 재현에 성공 각계에서 잊혀진 문화유산을 복원 계승 보전시킨 정씨의 업적을 높이 평가 중요 인물로 평가 주목 받고 있다. 그는 녹청자를 청자와 동등한 격조 높은 도자기 수준으로 변조하는데 성공했다. 모든 공정을 청자와 똑같이 하면서 겉 표면도 무빙열(잔실금) 상태인 최고급화에 성공했다. 다만 유약과 태토에서 산화철 함량 차이에 따라 청자와 녹청자로 양분 될뿐, 조질 태토로 빗은 녹청자의 개념을 불식시켜 준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전국의 청자 도예 공방은 6~700곳 백자 3~400곳 분청자기 공방은 셀 수 없을 만큼 국내 도예가들이 수천명을 헤아린다. 그런데도 남강은 1200여년전 통일 신라 말엽 변조된 녹청자 도자기를 고집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고 있어 남강의 발자취를 조명해 본다.
※ 천년 전을 재현한 녹청자 산실 화원요
한국 도자기에 신선한 발전을 도모한 남강 정기봉씨는 해남군 황산면 연호마을 부친의 호를 딴 화원요를 운영하고 있다. 20여평 남짓한 작은 도예공방과 또 다른 부속건물(숙성실, 자택)이 있는 이곳은 해남에서는 유일하게 3대째 도예가의 맥을 이어온 장소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물레 돌리는 소리를 쫓아 도예공방을 찾아 들어서자 남강은 작은 茶碗을 성형하고 있었다. 잠시 작업을 멈춘 남강은 차를 권했다. 응접실은 녹청자 전시장을 겸하고 있었다. 선반에는 매병 향토 다완 녹청자 장고재현품, 상감청자등 수많은 녹청자와 청자가 함께 아름답고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진열돼 있었다.
※ 도예는 천직 3대를 이어온 후손 남강 정기봉씨
한국 도자사의 전통을 계승하며 국내에서 보기 드문 녹청자를 재현한 남강은 지난 84년, 남들보다 5년 늦게 전북 원광대 미래(응용미술과 도예전공)를 졸업했다. 만학의 열정은 계속되며 2007년 2월에는 호남대 산업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그의 아들도 도예가의 길을 걷기 위해 호남대학교 산업디자인과(도예전공)에 재학중이다. 젊은 듯 젊지 않은 연륜을 지닌 남강선생은 처음부터 도예가로 나서지는 않았다고 한다. 남강의 조부는 70여년전 장흥 용산에서 현대 도예를 해보다 청자 재현을 위해 입지조건이 좋은 해남으로 터를 옮겨왔다고 한다. 그의 조부는 힘들게 걸어온 도공의 길을 자식에게 되물리고 싶지 않아 부친을 공부시켜 보란 듯이 학교 교사로 성장시켜 놓았는데 부친은 갑자기 교직을 접고 도예가로 전업한 2대가 됐다. 남강은 부친(95년작고)뿐만 아니라 아버지 3형제는 모두 전업하여 지금은 나란히 대를 이은 도예가의 가계가 되었다고 말한다. 74년 무균열의 청자를 완벽히 재현하신 부친이 어느날 해남 녹청자를 우리 부자가 재현해 보자는 제의에 이끌려 남강도 3대를 이은 도예가의 후손으로 벌써 15년째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 통일신라 말기 녹청자 토요의 산실 해남
1983년 4월부터 해남군 산이면 진산 초송, 구성리와 화원면 신덕 사롱리 일대 지표조사에서 156기의 녹청자 가마터가 발굴됐다. 해남군은 현재 513개 마을이 형성돼었다. 관내 가마터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를 실시하게 된다면 상상을 초월하는 몇 천기의 가마터가 훨씬 넘을 것이라고 향토사학자 및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전국에서 제일 많은 생산시설을 갖춘 도요지군이 해남에서 발견된 것. 그해 12월 13일 완도군 익산면 어두리 앞바다에서 무더기 녹청자가 인양되고 다음해(84년) 5월 23일 고도자기 30,673점이 인양됐다. 이 유물들은 해남에서 생산된 녹청자로 밝혀졌다. 녹청자 생산자는 전국에서 6군데로 알려져 있다. 대량 생산시설이 있는 대표적인 곳은 미 발굴지역을 포함한 해남군 전역이 유일하다. 이에 따라 해남군은 1985년 문화 재청으로부터 국가지정 문화재 사적 제 310호(5개지구 4,022평) 지정 받았다. 92년 목포대학에서 1기의 발굴 조사도 있었다. 1200여년전 한반도 서남해안에 위치한 전남 해남군 해안은 당시의 하이테크 세라믹 산업의 메카로 대량도자기 생산에 박차를 가하며 집단화를 이룬 곳이기도 하다. 삼면이 바다인 해남군은 강의지루가 잘 발달돼 내륙이 없는 특이한 지형을 갖추고 있다. 또한 양질의 점토와 도자기 생산에 필요한 목재가 풍부했던 곳으로 지류천이 형성됐던 주변 산기슭과 중터에서 지금도 도자기 편들이 가끔 발견되고 있다. 해남은 관요 중심인 전남 강진군과 전북 부안 경기여주, 이천, 광주시보다 그시기가 앞서 있다. 그 당시에는 도자기 생산 공업지대로 명성이 높았을것으로 추정도나 현재 해남군은 인근 강진군에 비해 도자기와 관련 인프라가 전무한 실정이다 맥을 이어줄 녹청자 도예가는 소수에 불과하고 대단위 도자기 생산지역으로서 국가지정 사적지마져 훼손돼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 문화재는 민족의 혼이 깃든 것이다.
문화재는 보존을 통해 후손들의 몫으로 남겨줘야할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귀중한 문화유산인 녹청자가 청자에 비해 각광 받지 못한 조질 자기란 이유 하나 때문에 버려진 문화재로 전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름다운 조형미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가치로 인해 궁중에서 왕족만이 소장할 수 있었던 비색의 청자. 하지만 녹청자가 청자에 비해 상기와 같은 미와 예술적 조형미에서 뒤 떨어진다고는 말할 수 없다. 단지 태토 선별에서 정제 되지 않은 거친 점토로 변조된 도자기지만 우수 질로 변조된 녹청자는 청자와 함께 우리나라 대표도기로써 충분한 예술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청자는 청자백자 분청자기 등과는 또 다른 고유 색자기라는 개념 정리가 분명치 않아 정부, 학계, 지자체의 입장이 어색하다. 엄연히 한국의 도자기의 발전사를 이끌어온 우리의 훌륭한 문화재이며 문화 유산인점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저급 도자기이니까 보존과 보전에 소홀함이 묻어난 대목이다. 문화유산은 아무리 작은 유.무형이라도 후손들에게 보여줄 선조들의 유산이며 동시에 소중히 다뤄야 할 역사며 선택이다.
※ 외면 받는 것은 편견에서 온 소치
해남군은 강진청자 축제가 활성화 돼 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은 조질 녹청자를 부각시키는 것에 대해 매우 상징적 표현에 그치고 있다. 전남도는 굳이 유사한 문화재 현장사업에 예산 중복을 꺼리며 사업계획 자체를 받지 않은 다른 것이다. 변별력 없는 무지의 경직된 공직자를 때문에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를 국민들로부터 외면 받고 있다. 문화재는 그 나라의 역사이며 정신인 얼이다. 역사성을 지닌 녹청자는 보존과 전승 대상에서 되고 안되는 소홀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삶의 가치가 투명된 귀중한 도자기이며 또한 해남군은 전국 최대 녹청자 생산지로서 도예문화를 발전시켜 나갈 역사가 있기 때문에 의지를 갖고 계승 발전에 힘을 모아야할 것이다. 부안군의 경우 청자전시관 건립사업에 220억을 들여 짓는 반면 해남군은 계획 자체가 없다. 전국 최대 녹청자도요지가 대량 발굴된 사례가 무색할만큼 관리마저 제대로 하고 있지 않아 안타깝다. 훌륭한 국제적 자산을 갖추고도 지자체의 능력 발휘를 못한다면 보석을 보고도 하찮은 돌멩이로 보는 우매함을 낳게 될 것이다. 녹청자는 문화재로서 가치가 분명하고 청자 생산의 근간을 이뤄 한반도의 도예기술 발달에 그 공이 지대이기 때문에 도자기 역사만큼 새로운 재 평가가 내려져야 한다. 문화는 다양성에서 비롯되며 이러한 문화 유산은 인류의 대단한 업적으로 평가돼야 한다. 지난 2007년 일요일 KBS 진품명품에서 해남에서 생산된 것으로 알려진 녹청자철와 장구가 감정가 12억원 가격대에 평가 받은바 있다. 이는 이미 문화재로서 희소성, 역사성, 작품성을 인정 받은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 도는 소외 되지 않게 해남군 전역에 묻혀 있는 가마터 발굴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 한반도 청자의 기원
예나 지금이나 중국은 옥을 귀하게 여겼으며 옥은 잡귀를 쫓고 건강과 장수, 복을 불러온다 해서 목공예품과 그릇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따라서 왕족과 귀족들은 옥생산량의 한계로 인해 대안인 옥빛을 띤 청자를 생산하게 됐다. 통일 신라시대(8~13세기)말 고려 초기에 당 청자는 왕족과 귀족들에게는 귀중품이며 함부로 얻을수 없는 귀한 보물로 여겨져 왔다. 생산량도 극히 적었고 높은 고가이다. 보니 청자는 선망의 대상이요 절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국내에서도 청자 생산을 시도한 도공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당 청자보다 더 아름답고 청아한 비색청자를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극히 제한된 생산량 때문에 대신 녹청자를 민수용으로 청자 대용자기로 생산 보급하였다. 지방 호적들은 녹청자를 소장하게 되고 더불어 대량생산기술발달로 해남군을 포함 6곳, 서남해안 지역은 녹청자 생산기지로 발전하여 해상무역의 전진기지로도 활용돼 왔다.
타고난 도예가 남강 명장반열에 올라
명장 반열에 오른 남강은 선친의 유지를 받들어 95년부터 해남 녹청자를 재현하며 녹청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 석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다.
도자기의 생산과 관련 과학적 접근을 시도하며 학술적 연구를 집중하고 있는 남강 정기봉씨는 호남대학 교수와 강진 성화 대학겸임 교수를 겸직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 수상경력은 ▲98년 전국 공예 대전 국무총리상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 특선 ▲전국 관광기념품 공모전 금상 ▲대한민국 전통공예대전 특선 ▲동아공예대전 우수상 ▲대한민국 현대공예공모전 특별상 ▲전남공예품 대전대상 ▲전남 관광기념품 공모전 최우수상 ▲전남 미술대전 특선 이와 같은 수상 경력을 힘입어 전국 기능 경기대회 심사위원 전남공예품 대전 심사위원 광주 전남 도예가 협회장 세계 도자기 축제 참가(일본아리타) 일본 초대전(91년) 순회전(94년) 한일전 통공예 교류전 일본초청 워크샵등 바쁜 일정을 보낸바 있다.
현재는 전국신지식인 연합회이사, 한국미협회원 및 공예협회 회원, 전통공예가회 회원, 녹청자 재현 추진위원회, 기술분야 위원장, 전남 공예 협동조합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녹청자 재현에 몰두하고 있다.
남강의 작품은 국내 최고 경지에 이른 수준급으로 평가 받고 있다.
청자에는 청아함이 있다면 녹청자는 인간의 체온이 느껴지듯 따뜻함이 베어 나온다.
지금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청자보다 녹청자 기색의 따뜻함에 매료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한다.
남강은 일본전시에서 청자와 함께 녹청자를 전시 결과 호감도가 상대적으로 녹청자의 인기가 높았다고 말하고 있다.
남강은 현재 도예명장과 국가 무형문화재, 지방 무형문화재 인증 절차를 받고 있다. 명장자격 심사 기준이 있지만 그중 나이에 대한 자격 조건이 걸림돌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국내 심의 위원들은 여러 검증된 수상경력과 얼마만큼 연륜을 쌓았는가를 본다는데 가까운 일본에도 우리나라와 유사한 제도지만 경력과 연륜은 별개 본다고 한다.
도예는 숙련이 필요하지만 개인의 능력에 따라 결정되며 그 분야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명장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돼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연륜은 참고일뿐 자격조건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도예발전을 위해서도 뛰어난 명인들이 명장과 무형문화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김정헌 기자